[기자수첩]광고의 음란함, 소비자탓만 할텐가

김보겸 기자I 2019.07.09 06:30:00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음란함은 니들 마음 속에 있는 거야.”

몇 년 전 유행으로 번진 이 말은 한 웹툰에서 시작됐다. 웹툰 캐릭터가 소변을 지리는 모습을 보고 독자들이 음란성을 지적하자, 작가는 묘사된 캐릭터의 입을 빌려 독자들에게 ‘웹툰이 아닌 당신들이 음란하다’고 일갈한 것이다.

아이스크림 브랜드 배스킨라빈스 광고가 아동 모델을 성적으로 대상화 했다는 논란이 일자 모델의 어머니가 해명에 나섰다. “아이스크림 맛을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한 광고가 일부 대중들에게 역겹게 느껴졌다”

해당 모델의 어머니 역시 ‘음란함은 니들 마음 속에 있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냥 광고일 뿐인데 성적(性的)으로 보는 게 더 이상하다’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광고의 지대한 영향력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조두순은 옳았다’, ‘아동성애는 원래 정상이다’, ‘충분히 이상한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예쁜 건 맞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캡처해 공개한 해당 광고에 대한 성희롱성 댓글을 보라. 음란함은 더이상 마음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갖은 성희롱과 성추행, 심지어 성폭력까지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나 피해자를 양산한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무시할 일이 아닌 이유다.

배스킨라빈스 아동 모델은 2008년생, 불과 10살이다. 광고에서 자신이 어떻게 비춰질지 인식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행여 예기치 못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없는지 모든 경우의 수를 판단해야 할 책임은 광고주와 부모에게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못한 이번 광고 기획자는 부모 참관 하에 촬영했다는 해명만으로 면책이 어렵다.

백번 양보해서 과연 배스킨라빈스는 이런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광고와 에로티시즘’을 쓴 김덕자 동서울대 광고디자인과 교수는 ‘우리 마음 속 음란함이 광고의 기본 요소’라고 지적했다. “마음 속에 잠재된 성애의 에너지는 항상 소비되도록 되어 있기에 광고 제작자들이 커뮤니케이션의 고리를 걸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음란함은 ‘독자의 마음 속’이 아닌 ‘광고주의 마음 속’에 있던 것은 아닐까. 하루 만에 내려간 30초짜리 광고가 씁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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