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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동물성, 두개의 정체성…인간을 들추다

김미경 기자I 2023.06.21 07:10:00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있는 작가 `둘`
'파이 이야기' 부커상 받은 얀 마텔
"인간은 신과 동물사이 존재일지도"
'동조자' 퓰리처상 비엣 타인 응우옌
날선 풍자, 실험적 문학장치 뛰어나
'동조자' 후속편 '헌신자' 국내 출간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어쩌면 삶은 ‘웃픈’(웃기면서 슬프다는 뜻) 일의 연속이다. 예상치 못한 불행과 행운이 교차하는, 휘청거리는 삶을 견디기 위해 사람들은 소설(문학)을 찾아 읽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혼돈과 불안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 때맞춰 당도한 작가 ‘둘’이 있다. 세계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캐나다 작가 얀 마텔(60)과 베트남계 미국인 소설가 비엣 타인 응우옌(52)이다. 각각 영국 부커상(2002)과 미국 퓰리처상(2016)을 받았다. 최근 신간(특별판)을 들고, 한국을 찾은 두 작가의 시선은 개인의 사적 감정과 경험 너머 인간을 향한다. 마텔은 우리 안의 동물성을 건드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응우옌은 식민주의·자본주의 같은 이데올로기가 현실에 잘못 적용됐을 때 인간에 닥치는 단상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엄정한 문장과 삶을 파고드는 질문들은 우리를 설득하고, 붙든다.
최근 신간 출간과 서울국제도서전(14~18일) 참석 차 한국을 찾은 얀 마텔(왼쪽)과 비엣 타인 응우옌 작가(사진=연합뉴스·뉴시스 제공).
우리안의 동물성 건드린 ‘얀 마텔’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는 50개국에서 번역 출간해 1200만부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그에게 세계 권위의 문학상인 영국 부커상을 안긴 작품이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3년)로도 제작된 작품은 미국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인도 소년 ‘파이 파텔’과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227일간 태평양 표류기를 통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그는 “인도를 여행할 당시 다른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잘 풀리지 않았다. 힌두교가 눈에 들어왔다”며 “힌두교 신화에는 많은 동물이 등장한다. 어쩌면 인간은 신과 동물 사이에 있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마텔은 스티븐 하퍼 캐나다 전 총리 관련 일화로도 유명하다. 2007년 한 문화행사에 참석했다가 당시 총리였던 하퍼가 무관심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총리에게 4년간 문학작품을 추천하는 편지 101통을 보냈는데, 이를 모아 책으로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마텔은 “픽션을 통해 상상력과 공감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캐나다의 기득권층인 중년 백인 남자들은 20대 이후로 문학작품을 읽지 않는다”며 “문학을 읽지 않는다면 비전과 꿈을 어디에서 얻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AI) 시대 문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부 수반이나 기업 총수와 같은 이들이 책을 읽지 않으면, 그들의 꿈이 나의 악몽이 될 수 있습니다.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그들이 가치 있는 꿈을 꾸려면 문학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배워야 합니다.”

이번 방한에 맞춰 그의 데뷔작 ‘헬싱키 로커모쇼가 이면의 진실’과 ‘파이 이야기’를 묶은 특별 합본판(작가정신)을 출간했다. 내년 봄에는 신작 ‘선 오브 노바디’(Son of Nobody)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트로이 전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어리석고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는 인간들을 보며 현대의 우리도 끊임없이 트로이 전쟁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며 “전쟁에서 이겨도 결국 모든 것을 잃는 결말도 오늘날과 비슷하다”고 했다.

방한에 맞춰 출간된 얀 마텔의 데뷔작과 인기작을 묶은 특별 합본판(작가정신)과 응우옌의 국내 신간 ‘헌신자’(민음사).
◇‘이중의 정체성’ 베트남계 미국인 응우옌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비밀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소설 ‘동조자’의 첫 문장이다.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응우옌은 자신 스스로를 “이중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베트남계 미국인으로서 집 안에선 베트남 부모를 염탐하는 미국 스파이로, 집 밖에선 미국인을 염탐하는 베트남의 스파이같은 기분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다민족·다문화 작가들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미국 현대 문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날선 풍자와 실험적 문학 장치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소설은 박찬욱 감독이 연출을 맡은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있다. 응우옌은 베트남 전쟁 난민 출신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1971년 남베트남 지역에서 자랐다. 1975년 호찌민이 함락되자 난민이 돼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이러한 성장 배경 속에서 자신의 소설이 탄생했다고 했다. 2018년 민음사를 통해 번역 출간된 ‘동조자’는 냉전 시기 사회주의 베트남과 자유주의 미국 양쪽의 잘못을 골고루 풍자한다. 작가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주인공은 어느 세력에나 ‘동조’하고, 쉽게 한쪽 편을 정하지 못하는 인물”이라며 “소설은 그 누구의 편을 들기보단 사람들이 자기의 지난 과오를 어떻게든 정당화하려는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비판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동조자의 후속편인 ‘헌신자’(민음사)도 이번 방한에 맞춰 번역 출간됐다. 책은 전편의 주인공이 베트남을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로 넘어가면서 무엇을 위해 ‘헌신’할 지 고민하는 과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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