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3월 17일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이 아시아에서 가장 강도 높은 봉쇄조치를 선포한 이후 두 달이 넘었지만 아직 일일 확진자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코로나 발발 이후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의 파괴, 저유가로 인한 셰일산업의 몰락, 디지털 경제의 가속화 등 산업구조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으며 필리핀의 콜센터 산업도 그 선상에 놓여 있다.
필리핀은 영어를 상용어로 사용하고 중위연령이 25.7세에 불과하여 영어에 능통한 젊은 노동인구가 풍부하다. 반면에 필리핀 국토는 7000개 이상의 섬으로 이뤄져있다보니 제조업 입지 경쟁력은 동남아 인근국인 베트남, 태국에 비해 다소 취약하다. 이러한 면에서 고비용의 물류보다 전화선에 의존해 영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웃소싱 산업이 발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산업형태를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BPO, Business Process Outsourcing)이라고 한다. 회사의 핵심업무를 제외한 고객 응대, 단순 데이터 입력 등의 기능을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필리핀은 현재 인도와 더불어 가장 각광받는 BPO 대상국이다. 현재 필리핀에는 시티뱅크, JP모건, 아마존, 엑센츄어 등 세계적 기업들의 콜센터가 운영되는 등 1000개 이상의 기업에서 120만 명의 필리핀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BPO 산업은 필리핀 GDP의 11%를 차지할 정도로 필리핀 경제의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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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을 절감하고 운영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의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아마존의 알렉사(Alexa)처럼 챗봇(chatbot)의 출현으로 인간을 대체해 목소리를 인지하고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들을 처리해주는 것이 가능해졌다. 영어가 능통한 인적 자원에 의존했던 필리핀으로서는 이러한 신기술의 출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공지능 도입 움직임은 코로나 발생 전에도 존재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아웃소싱 전문업체인 [24]7.ai는 코로나 발생 이후 기업들로부터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의 활용 형태가 기존 목소리에서 문자를 통한 대화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더 많은 인력의 대체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필리핀 IT&아웃소싱 산업단체인 IBPAP(IT and Business Process Association of the Philippines)에 따르면 고숙련 기능을 갖춘 15%만이 인공지능의 위협으로부터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예전과 같은 형태의 근무방식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다.
코로나 이후 많은 이들이 ‘뉴노멀(New Normal)’을 이야기한다. 디지털 경제가 더욱 가속화됨에 따라 인간들이 점유하고 있던 많은 영역들이 기계나 컴퓨터로 대체될 것이다. 강한 자가 아니라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고 했다. 필리핀 콜센터 산업의 위기를 먼 산 보듯 할 수 없는 것은 우리 모두 언제든지 유사한 도전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