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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은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선수 인생을 스스로 돌아봤다.
소속팀과 대표팀을 통틀어 각종 공식대회에서 844경기를 뛰었고 344골을 기록한 이동국은 “포항에서 33번과 내 이름이 마킹된 첫 프로 유니폼 받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그때 며칠 동안이나 그걸 입고 잤다”고 떠올렸다. 아울러 “2009년 전북에 입단해 첫 우승컵을 들었을 때도 최고의 순간이다”며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간이 아닐까”라고 말한 뒤 살짝 미소를 지었다.
반면 월드컵은 이동국에게 희비가 엇갈린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이동국은 “프랑스 월드컵 이전에는 내가 한국 축구계의 가장 큰 이슈였고 그 때 기억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며 “하루하루가 기뻤던 순간이었으며 2002년 월드컵 경기에 내가 무조건 있으리라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2002년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던 그때의 기억이 오래 운동을 할 수 있게 한 보약이 된 것 같다”며 “잊지 못할 기억이다”고 말했다.
또한 이동국은 “2002년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며 “2달 남기고 부상으로 놓쳤을 때가 가장 아쉽다. 너무 힘들었고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좌절할 때마다 나보다 더 크게 좌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그보다는 내가 행복하지 않나 생각하니 스트레스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본인이 터뜨린 344골 가운데 최고의 골도 직접 선택했다. “독일과 평가전에서 넣은 발리슛 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발이 공에 맞는 순간의 임팩트, 그 찰나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이동국은 K리그의 최다 출전, 최다 골 등 거의 모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경기 출전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내가 뛴 공식 경기가 800경기가 넘는다는 것을 오늘 아침에 알게 됐다”며 “10, 20년을 꾸준히 잘했기에 가능한 기록이다. 좋은 경기력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 기록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동국은 최근 걸출한 토종 공격수가 K리그에서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숨기지 않았다. “모든 팀이 외국인 공격수를 선호하기 때문에 아시아 리그에서 스트라이커로 살아남는 건 참 힘든 일이다”며 “좋은 스트라이커를 키우려면 출전시간을 보장해주면서 구단이 계획을 세우고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21세 이하 선수 의무 출전 규정이 잘 자리 잡아서 아마 5~10년 안에는 대형 스트라이커가 나올 것 같다”며 “‘오버 42세 룰’이 생기면 내가 1년 더 현역 생활을 할 생각이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