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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보수 대란②]"부르는 게 값?"…급격한 인상에 기업 부담 커져

이광수 기자I 2020.02.10 05:11:00

주기적 지정제로 상장사 협상력 약화
"감사인이 요구한 감사보수 거절할 수 없어"
급격한 상승에…영업익 고스란히 감사보수로
"합리적인 감사보수 산정 필요해"

[이데일리 이광수 기자]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가 도입되면서, 감사보수가 2~3배 치솟고 있다. 그동안 자율수입제 형태로 최저가 회계법인을 선택했던 상장사들의 협상력이 급격히 약화된 영향이다. 주기적 지정제가 도입되기 전엔 기업이 회계법인으로부터 입찰을 받았고, 이 중 최저가를 적어낸 감사인과 계약하는 형태였다.

주기적 지정제는 상장사와 소유·경영 미분리 대형 비상장 주식회사가 6년 연속 감사인을 자유 선임하면 이후 3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감사인을 선임하도록 하는 제도다. 자율수임제 하에서 일부 기업과 회계법인 사이에서 유착이 발생하는 등 회계 투명성을 가로 막는 일들이 발생했고, 이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 “감사보수 ‘두 배’ 불러”…거절 못하는 상장사

상장사는 주기적 지정제에 따라 금융당국으로부터 외부감사인을 지정받기 때문에 감사인이 요구하는 감사보수를 거절할 방법이 딱히 없다. 과거에는 상장사가 최저가 입찰만 찾아 오히려 문제였는데, 이제는 새 외부감사인이 요구하는 높은 감사보수를 거부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특히 감사를 받아야 하는 상장사 입장에선 협상 과정의 잡음도 두렵다. 한 주기적 지정제 지정 상장사는 “앞으로 우리 회사를 감사할 곳인데 감사인이 감사보수에 불만을 갖게 되면 향후 감사 분위기가 딱딱해질 우려가 있다”며 “감사보수를 낮춰달라고 강력하게 말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번에 주기적 지정제로 감사계약을 맺은 상장사들은 시간당 11만~13만원의 단가에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수임제 하에서는 시간당 단가는 6만~8만원대 수준이었다. 여기에 표준감사시간제도로 늘어난 감사투입시간을 고려하면 감사보수가 두 배 이상으로 뛰는 것이다. 이같은 감사보수 급등 현상은 올해 주기적 지정대상 기업 대상인 상장사 220곳에 공통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장사의 협상카드는 계약을 하지 않고 버티는 것 뿐이다. 현재까지 주기적 감사인 지정을 통지받은 상장사들은 모두 감사계약을 완료했지만, 일부 법인은 감사보수를 놓고 올해 들어서야 계약을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초 금융감독원은 작년 말 감사인 지정을 통지받은 상장사 823곳(주기적 지정+직권 지정)중 812곳(98.7%)가 감사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감사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회사 11곳과 회계법인에 대해서는 계약 미체결 사유 확인절차 등을 거쳐 합당한 사유가 없는 경우 행정조치할 예정이다.

상장사들은 감사보수 인상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한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신(新)외부감사법의 도입 취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시간 당 단가에 캡(cap)을 씌워 순차적인 감사보수 인상으로 기업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 올해 산업전망 어두운데…“번 돈보다 더 내” 불만도

상장사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감사보수 산정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 외부감사인과 계약을 맺은 한 상장사 관계자는 “새 외부감사인이 회사의 자산규모가 커졌다는 것을 감사보수 급등의 이유로 설명했다”며 “하지만 과거에 비해 현금흐름은 악화된 상황인데 이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상장사가 납득할 수 있는 감사보수 산정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장사 B는 새 외부감사인과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뛴 5억원에 감사보수 계약을 체결했으나, B사는 지난해 업황 악화 등으로 영업이익이 2억원에 그쳤다. 회사가 남긴 이익보다 감사보수 금액이 더 큰 것이다. 이처럼 회사의 현금흐름은 악화됐는데, 감사보수가 두 배 이상 뛰면서 상장사들의 불만과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도 경영 환경이 좋지 않으면서 B사와 같은 사례는 더 많아질 전망이다. 한국신용평가는 21개 산업의 업황 등을 분석한 결과 올해 산업 전망(Industry Outlook)이 ‘우호적’인 산업은 한 곳도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만큼 올해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좋지 않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회계법인들의 주먹구구식 감사보수 금액 제시를 막기 위해 과거 한국공인회계사회는 감사보수 산정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며, 지금은 각 회계법인 자체적으로 감사보수를 산정하고 있다. 한 회계법인 고위 관계자는 “현재는 업무의 난이도 등을 각 회계법인이 판단해 시간 당 단가를 책정하고 있다”며 “감사인과 피감법인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시간 당 단가가 시장에서 형성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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