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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은 세월호 탐색과 인명구조를 위해 210일 동안 연인원 68만명, 장비 1만 2000여대를 투입했다. 잠수사 한사람 당 평균 700시간씩 진도 앞바다에 입수해 시신을 수습했다. 익사한 시신들을 매일 지켜본 잠수자들은 악몽에 시달리느라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하지만 매번 입수와 퇴수 때마다 “Diver OK”를 외쳤다. 동료를 안심시키고 본인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외침이었다. 작년 4월 25일 주환웅(37) 심해잠수사(상사)는 흐느껴 울었다고 했다. 이날 진도체육관에선 첫 실종자 가족 설명회가 열렸다. 주 상사가 현장브리핑에 배석했다가 체육관을 빠져나올 때 한 아주머니가 주 상사 앞에 섰다. 아주머니는 조그마하게 접은 쪽지 하나를 주 상사의 군복 상의 왼쪽 가슴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제발 우리 아이도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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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눈물 흘려본 기억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쪽지를 읽고 목이 메었습니다. 쪽지를 돌려 본 다른 잠수사 동료들도 모두 울었습니다.”
세월호 실종자 구조작전을 총 지휘했던 제병렬(50) 55군수지원전대장(대령)은 지금도 1년전 침몰한 세월호에서 겪었던 아찔했던 순간들이 생생하다.
선내 수색 중 좁은 통로를 지나던 잠수사가 갑자기 무너진 격벽에 깔렸다가 가까스로 빠져 나왔을 때는 지금도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른다. 제 전대장은 “시야가 30cm에 불과한 바다 속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일주일간 햇빛을 보지 못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제 전대장은 작년 10월 28일 새벽을 잊지 못한다. “수중 작업을 마친 잠수사가 복귀하던 중에 세월호 선체 내에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겨우 물 밖으로 끌어냈지요.” 다행히 그 잠수사는 건강을 되찾아 지금도 해군서 근무 중이다.
제 전대장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국가적 해상 재난이 발생한 지 한 해가 됐다.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선 안된다”며 “안전 불감증에 빠져 있던 우리사회가 세월호 사건 이후로 의식을 전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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