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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무비 육성했던 영발기금, 17년 만에 폐지되나…영화계 "최악의 결정" 반발

김보영 기자I 2024.03.27 15:18:21

尹, 영화관 입장권 부담금 등 18개 부담금 폐지 발표
입장권 부담금이 유일한 재원…"일반회계 지원할 것"
PGK, 영화 단체들과 성명 준비…"대안도 없어" 비판
힘든 극장에 숨통 터줄까…"티켓 가격 인하는 글쎄"

서울의 한 극장 전경.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사업 예산으로 쓰였던 영화발전기금(이하 영발기금)의 유일한 재원 영화관 입장권 부담금이 결국 시행 17년 만에 폐지 수순을 걷게 됐다. 이 부담금의 폐지는 곧 영화발전기금의 폐지 여부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 영화의 육성 및 발전을 위한 미래 예산으로 요긴하게 사용됐던 입장권 부담금이 폐지된다는 소식에 영화계는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입장권 부담금을 폐지해도 국고 지원 등을 통해 영화발전기금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나, 공백을 채울 실질적 재원이나 펀드 등 구체적 대안을 명시하지 않은 일방적 발표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다. 다만 부담금 폐지가 오히려 코로나19 이후 관객 수 감소와 티켓 가격 상승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영화관들이 숨통을 틀 수 있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는 낙관론도 존재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오후 서울 용산 청사에서 제2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최, “지난 20년간 부담금을 11개 줄이는데 그쳤는데 이번엔 한 번에 18개 부담금을 폐지할 것”이라며 이같은 방침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영화 티켓에 부과되는 영화관 입장권 부담금도 없앨 것”이라며 “부담금 폐지를 통해 영화 요금 인하가 이뤄질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국민들이 납부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던 준조세 성격의 부담금들을 폐지함으로써 관련 요금들의 인하를 꾀하고 민생 안정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다.

영발기금은 2007년 영화관 입장권 부담금 정책 시행과 함께 생겨났다. 영화관 입장권 부담금은 국민이 낸 영화 티켓값의 3%를 영화계 발전을 위한 재투자의 명목으로 걷으면, 이를 극장이 대신 영진위에 납부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티켓값 1만 5000원을 기준으로 470원 정도에 해당한다. 신인 창작자의 육성부터 독립·예술영화 지원, 아시아 최대 규모의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국내 영화제들의 지원 등 영화계 주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핵심 예산으로 쓰여왔다.

하지만 팬데믹을 계기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적어지고 영화관 입장권 부담금 징수액이 줄어들며 수 년간 기금고갈에 시달렸다. 이로 인해 영진위의 주요 사업 예산도 반토막으로 줄어 독립·예술 영화와 국내 영화제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현재로서 영진위가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은 영발기금이 사실상 유일하다. 영발기금이 폐지되면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도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서울의 한 극장 전경. (사진=이영훈 기자)
소식을 접한 영화계는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이동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대표는 이데일리에 “실질적으로 국민이 납부해온 부담금은 1인당 400원 수준인데 이 부담금을 폐지한다고 해서 극장들이 관객이 당장 체감할 만할 티켓 가격 인하 정책을 펼칠지는 의문”이라고 하소연했다. PGK는 조만간 영화제작자협회를 비롯한 각종 영화인 단체들과 논의해 이번 정부 발표에 항의하는 취지의 연대 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영화발전기금은 지난 수십 년동안 발전을 거듭한 K무비가 오늘날 세계적인 호응을 받게 된 과정에 가장 바탕이 됐던 정책”이라며 “정부는 이와 관련해 당장의 구체적 계획이나 대안 없이 올해와 내년 체육·복권 기금을 투입해 고갈된 영발기금을 일시적으로 채워주겠단 말로 모두를 현혹했다”고 비판했다. 또 “유럽에선 문화회복기금을 만들어 코로나19 이후 문화계 전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대책 마련에 애를 쓰고 있다. 반면 우리는 당장 영화계가 위기고 힘든 상황에 R&D 예산과도 같던 기금을 없애는 최악의 결정을 내리니 암담하기 이를데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영진위 역시 소식을 접한 뒤 이번 발표와 관련한 대응 및 대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영진위의 9인 위원들은 이날 오전부터 이번 발표와 관련한 소문을 접해 관련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영진위 측은 부담금 폐지가 곧 영발기금 자체의 폐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도 부연했다. 영진위는 이데일리에 “영발기금 자체가 폐지되는 것은 아니고 티켓 총액에 부과되던 부담금만 없애겠다는 것”이라며 “부담금으로 빈 발전기금은 일반회계(국고)를 활용해서라도 지원하겠다는 방침으로 안다. 영진위에서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영발기금 재원을 다각화할 수 있도록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기획재정부와 긴밀히 협의하고 영화 산업 발전을 위한 예산이 줄어들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문체부는 이날 회의 이후 추가 보도자료를 통해 영발기금은 유지하겠다는 내용을 강조했으나, 기금의 빈자리를 메울 국고 지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시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포함돼있지 않았다.

부담금의 폐지가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겪던 극장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멀티플렉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발기금이 폐지가 되면 극장과 배급사가 납부하던 3%의 부담금을 앞으로 내지 않아도 되는 만큼 극장이 1.5%, 개봉하는 영화들이 1.5% 정도 부담금으로 납부했던 몫의 금액들을 가져갈 수 있게 된다”며 “이로써 영화 업계에 조금이나마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영화관 입장권 부담금의 폐지가 실질적인 극장 티켓값 인하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힘들었던 극장이 조금씩 숨통을 트고 있는 상황에서 티켓값을 인상한지 2년 정도밖에 지나기 않았다. 임대료와 인건비 관리비 등도 다 인상됐다”며 “일단 티켓 가격 인하와 관련해선 실질적으로 부담금 폐지가 시행이 되면, 그 시점에 따라 검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멀티플렉스 업계 관계자 역시 “부담금 폐지와 관련한 구체적 정부 방침과 시장상황. 향후 법률개정 상황 등 고려해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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