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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존슨앤드존슨, 바이오벤처 직접 키우는 'J랩' 가보니…

강경훈 기자I 2017.11.07 06:05:00

북미 7곳·유럽 1곳 J랩에 180여 벤처 입주
사용료만 내면 고가 실험장비·시설 이용
존슨앤존슨 신약개발 노하우 벤처기업에 전수
유망 기업 잘 키워 선점하는 효과

캘리포니아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위치한 J랩 전경.(사진=강경훈 기자)
[샌프란시스코(미국)=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자체적인 연구만으로는 유전질환이나 희소질환 등 아직 치료법이 없는 질환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똘똘 뭉친 역량 있는 외부 벤처기업들이 경쟁력이 있습니다. ‘J랩’은 그들이 마음껏 실험을 하고 아이디어를 펼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멘토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J랩은 미국계 글로벌 제약사인 존슨앤드존슨(JNJ)이 운영하는 바이오벤처 인큐베이팅 시설이다. 레슬리 스톨즈 캘리포니아 지역 J랩 책임자는 J랩을 “오픈이노베이션의 성공사례”라고 강조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초기 바이오벤처들이 초기 비용 부담 없이 일정의 이용료만 내면 냉동고, 고압멸균기, 원심분리기 등 실험장비와 사무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J랩은 2012년 샌디에이고 JNJ 연구소 한 켠에서 시작됐다. 연구소의 남는 공간을 그 지역 바이오벤처 4곳에 제공하면서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현재 북미지역 7곳, 유럽(벨기에) 1곳 등 8곳의 J랩이 만들어졌으며 내년에 뉴욕과 휴스톤에 새로운 J랩이 문을 열게 된다. 현재 180여곳의 바이오벤처들이 J랩에 입주해 있다.

지난 3일 기자가 방문한 남샌프란시스코(SSF) J랩에는 29개 기업 150여명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JNJ는 캘리포니아 주에 3개의 J랩을 운영 중인데 이 중 2곳이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있다. J랩은 크기가 다른 각종 실험실과 회의실, 미팅룸 등이 있으며 로비는 공항 라운지가 연상될 만큼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다.

제임스 비올라 SSF J랩 이노베이션 매니저는 “현재는 보잘 것 없는 스타트업에 불과하지만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 같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인테리어에 신경썼다”고 말했다. 로비의 한쪽 벽은 입주사 29 곳의 이름이 적힌 명판으로 장식돼 있었다. J랩에서 규모를 키워 독립한 회사 16곳의 명판에는 졸업을 뜻하는 사각모가 달려 있었다.

남샌프란시스코 J랩의 한 쪽 벽에 있는 입주사 명판. 사각모는 J랩에서 규모를 키워 이전했다는 의미이다.(사진=강경훈 기자)
J랩은 단순히 공간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입주기업의 성장단계에 맞게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프로그램 중에는 파이낸싱, 보안, 스토리텔링 등 기업 경영에 꼭 필요하지만 소규모 벤처기업이 신경쓰지 못하는 세세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스톨즈 책임자는 “바이오벤처는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춰 독자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5~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특히 초기 단계에는 다양한 도움이 필요하다”며 “J랩은 규제기관 대응이나 연구개발의 우선순위 설정, 연구비 지원 등 경험이 필요한 일들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기업의 체계를 초기부터 잡아 주고 기업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레슬리 스톨즈 캘리포니아 J랩 총괄 책임자가 J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입주사들이 가장 만족하는 부분 중 하나가 ‘네트워크’이다. J랩에 입주해 차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키메라 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를 개발 중인 키메라 바이오엔지니어링의 벤왕 창업자는 “J랩에서 만난 다른 회사들과 다양한 협력을 통해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고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된다”며 “이곳에 입주한 회사들이 각각 분야도 다르고 모두 스타트업 단계에 있다 보니 경쟁보다는 서로 돕고 정보를 공유하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스톨즈 책임자는 “외부 방문이나 지역의 컨퍼런스가 열리면 관심 있는 사람들을 J랩에 초청해 입주사들을 소개한다”며 “입주사들은 자신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고 방문자들은 새로운 연구분야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된다”고 말했다.

공식적으로는 J랩에 입주한 회사들과 JNJ는 독립적이다. J랩에 입주했다고 해서 연구결과를 JNJ와 공유할 필요가 없다. 스톨즈 책임자는 “J랩은 JNJ의 오랜 경험을 바이오벤처와 공유하고 벤처기업들이 서로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JNJ가 J랩 운영을 통해 유망한 기업이나 기술을 선점하는 효과를 얻는다고 본다. J랩 졸업사 중 하나인 악터러스는 J랩에 입주해 있는 동안 JNJ와 협력해 기술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를 바탕으로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아 현재 B형간염 RNA 치료제를 JNJ의 전문의약품 회사인 얀센과 공동으로 개발 중이다. 또다른 J랩 졸업사인 베단타 바이오사이언스는 초기 단계에서 JNJ의 투자전문 회사인 JJDC로부터 투자를 받아 마이크로바이옴 기술을 개발해 이를 일본 리켄연구소, 도쿄대, 아자부대 등에 기술이전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입주사들이 어떤 아이템을 연구 중이고 어느 정도의 기술력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면 경쟁사들보다 빨리 이들과 접촉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형 제약사와 벤처기업이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KPF 디플로마-과학 저널리즘과 과학기술 해외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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