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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당신은 놀 줄 아십니까

최은영 기자I 2017.01.24 05:30:00

포드 "쉼표 없이 마침표 없다", 유희는 성공의 필수 조건
'놀이=소비'도 잊지 말아야···불황에 더 필요한 '유희인간'

[이데일리 최은영 기자]새해 첫 칼럼, 무슨 이야기를 할까. 설 명절을 앞두고 계란에 고기, 무·당근 등 채소까지 줄줄이 가격이 올라 눈칫밥 먹게 생긴 조상님 얘기? 부정청탁 하지 말라고 만든 법 때문에 명절 차례상과 선물까지 죄다 수입산 일색이 되어버린 웃기면서도 슬픈 현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한가롭다 할 수 있겠으나 오늘은 ‘제대로 놀아보자’고 외칠 참이다.

얼마 전 직장생활 20년 만에 처음으로 겨울 휴가를 받아 2박3일간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이전까지 내 기억에 부산은 ‘영화의 도시’였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문화부 기자 시절 해마다 10월 가을이면 영화제를 취재하느라 짧게는 5일, 길게는 9일까지도 부산에 머물렀다.

하지만 단언컨대 부산의 진짜 매력을 알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의 명물이라는 국제시장의 ‘씨앗호떡’은 꿀맛이었다. 갈매기와 비둘기가 한데 노니는 해운대 백사장은 부산에 머물며 묵었던 호텔 이름처럼 ‘파라다이스’였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인 ‘영화의 전당’은 축구장 1.5배 크기, 4000톤 무게의 거대한 지붕을 기둥 하나가 떠받치고 있다. 태풍이 불면 평상시 땅 속에 숨어 있는 보조기둥이 안테나처럼 솟아올라 지붕을 받친다고 한다.

영화의 전당 바로 옆에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이 위치했다. 영화의 전당은 세계 최대의 캔틸레버(외팔보) 지붕으로,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은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각각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해마다 일 때문에 영화의 전당을 비롯한 부산 곳곳을 누비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다.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당일치기로 대마도 관광도 다녀왔다. 모처럼 해외여행에 면세점 쇼핑의 즐거움까지 덤으로 챙겼다. 정확히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2박3일 일정에 100만원은 족히 쓴 듯하다.

별 것 아닌 겨울휴가 이야기를 이렇듯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놀이의 즐거움’을 말하기 위함이다. 인간이 지닌 다른 동물과 다른 본질 중 하나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유희(遊戱)’를 즐길 줄 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하위징아는 ‘유희 본능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이며 가장 고귀한 활동’이라고 했다.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들의 대부분은 호모 루덴스의 충동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도 주장했다.

우리는 어떤가. 혹시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며 노동의 가치를 필요 이상으로 강조한 적은 없나. 반대로 ‘놀고 있네’라며 놀이의 가치를 폄하한 적은? 연차에 휴가 꼬박꼬박 챙겨먹을 요량이면 애당초 직장에서 별(임원) 달 생각은 말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러내놓고 노는 것을 죄악시 여긴다. 사회적 분위기가 이러하니 기성세대는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은 낙오자로 낙인 찍혀 제도권 밖으로 더욱 멀리 밀려난다.

‘놀이’ 이면에 숨은 단어가 ‘소비’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 놀기 위해서는 지갑을 열어야 한다. 그것도 기꺼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도 요즘 같은 불황에 이보다 더 절실한 인간상이 또 있을까.

시대가 달라졌다. 먹고사는 일이 급했을 때에는 노동의 가치가 부각됐지만, 일에 중독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겐 휴식과 놀이가 최고의 보약이다. 요즘은 놀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고, 또 성공하는 세상이다.

‘자동차의 왕’으로 불리는 포드사의 창업자 헨리 포드는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고 했다. ‘성공의 마침표 앞엔 언제나 성공의 쉼표가 필요하다’는 그의 철학을 열렬히 지지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칼럼에 영감을 준 김관수 현대백화점 전무님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매일 아침 그가 SNS로 지인들에게 배달하는 ‘오늘의 유머’는 ‘밥벌이의 지겨움’을 ‘즐거움’으로 돌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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