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 그리고 법률]안전하고 든든한 노후를 위한 소견

이성기 기자I 2019.12.28 08:15:00

긁어부스럼·과신·체념 탓 삶의 `대미` 순간 무방비
분쟁 예방 차원 재산, 신상 법적 준비 미리 해 둬야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사단법인 온율 배광열 변호사] 치매 등으로 판단 능력이 부족해진 뒤에 발생하는 여러 분쟁의 해결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상당수의 분쟁은 미래를 대비한 법적인 준비를 소홀히 한 데에서 출발한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지금은 또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에 대해서는 무방비하다는 점이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판단 능력이 부족한 때를 대비하려고 하지 않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접한 이유 3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A씨는 치매가 올 때를 미리 대비해 큰 딸을 임의 후견인으로 하는 후견계약을 체결했고 공증도 마쳤다. 후견계약을 준비하면서 A씨 마음에 걸렸던 것은 평소에도 언니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아왔다고 불만을 토로하던 둘째 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후견계약 체결 사실을 알게 된 둘째 딸은 모녀 관계를 끊고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겠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큰 딸도 동생과 관계가 나빠지면서까지 해야 하냐며 다시 생각해 보자고 설득했다. 결국 A씨는 후견계약을 철회했다.

둘째, 자신에 대한 과신(過信)이다. 자수성가한 B씨는 90대가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보유한 상가 임차인 관리와 사소한 하자 수리까지 전부 본인이 도맡아 하고 있다. 보다 못한 B씨 자녀들은 후견계약을 체결하고 주요한 재산은 신탁해둘 것을 제안했다. 아직까지 정정한 자신을 벌써부터 치매에 걸린 노인 취급하는 자녀들의 태도가 불쾌했고, 자식들이 `신탁`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빼돌리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까지 들었다. B씨는 자녀들에게 다시는 그런 얘기를 꺼내지도 말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

셋째, 체념이다. C씨는 20년째 거주하고 있는 시가 3억원의 20평대 아파트 이 외에는 특별한 재산이 없다. 정기적인 소득은 인근 상가 경비원을 하면서 버는 월 200만원이 전부다. 평소 경비원 월급으로 겨우 살아가는 자신이 치매에 걸리면 요양원, 요양병원을 전전하다 생을 마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돌봄이나 얼마 되지도 않는 재산관리를 맡긴다고 해서 여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미래에 대한 법적 대비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후견계약을 철회한 A씨는 2년 뒤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A씨의 돌봄과 재산을 놓고 자매 간 분쟁이 발생했고 결국 제3자가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됐다. 이미 둘째 딸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불만이 있는 이상 후견계약을 체결해 두었더라도 분쟁은 발생했을 것이었다. 다만, A씨가 후견계약을 체결해 뒀더라면 분쟁에도 불구하고 임의 후견인인 장녀가 A씨를 평소 뜻대로 돌봐 적어도 존엄한 노후가 보장됐을 것이다.

둘째 사례의 B씨가 간과한 것은 후견계약을 체결하고 재산을 신탁해두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신상, 재산에 대한 통제를 마지막까지 본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이란 점이다. B씨가 치매에 걸리게 되면 신상과 재산은 자녀들 또는 생면부지의 제3자가 통제하게 될 것이고, 미리 법적 준비를 했을 때보다 B씨의 의사가 존중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C씨와 같은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이야 말로 법적 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살고 있는 집 한 채, 각종 연금, 기초생활수급비 등 공적부조 외에는 특별한 자산이 없는 고령자들이 치매 등으로 판단능력이 부족해져 그마저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영위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노후와 관련해 갖는 걱정의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법적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선진국들은 이런 걱정에서 출발해 미리 법적 준비를 하는 것이 정착돼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약 1200만명인 영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임의후견과 유사한 `지속적 대리권`(Lasting Power of Attorney)을 등록한 사람이 약 380만명에 이르고, 65세 이상 인구가 약 1770만 명인 독일은 마찬가지의 지속적 대리권(Vorsorgevollmacht)을 등록한 사람이 약 320만명에 이른다. 65세이상 인구가 78만명인 싱가포르도 지속적 대리권을 등록한 사람이 1만2000명 수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미리 자신의 재산, 신상에 대한 법적 준비를 해두는 것이 앞으로 일반적인 모습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미리 법적 준비를 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이유이다.

☞배광열((裵光烈)변호사는

△변시 3회 △사단법인 온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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