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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수출 딜레마]1조5천억 기술수출한 바이오벤처 대표의 하소연

류성 기자I 2019.08.12 05:06:00

베링거인겔하임에 1.5조 기술계약,이정규 브릿지대표
"신약기술 수출에 대한 지나친 시장기대감이 부담"
투자자는 기술수출이 안고있는 불확실성 숙지해야
짧은 기술수출 역사탓 시장,투자자의 성숙도 부족

신약개발 단계별 성공 확률 [이데일리 김다은 기자]
[이데일리 류성 기자] “임상1상을 거친 신약후보를 라이선스 아웃하면 상품화로 이어질 확률이 거껏해야 10%에 불과하다. 수출한 신약기술이 상품화에 성공하기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9배나 많다는 얘기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창업자 겸 대표는 신약기술 수출에 대한 투자자들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고 경계했다. 설립한지 불과 4년밖에 안된 신생 바이오벤처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지난달 다국적 제약사인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간질성 폐질환 치료제 기술을 상품화시 총1조5000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수출계약을 체결,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회사는 이번 계약을 통해 계약금만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600억원을 받았다.

이 대표는 조단위 신약기술 수출을 성사시키는 쾌거를 이뤄냈음에도 계약의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투자자들의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언제든지 수출계약이 취소될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자칫 투자자들의 지나친 낙관은 나중에 회사에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올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대표는 “신약기술 수출의 위험성을 사전에 투자자들이 제대로 공부하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며 “특히 투자자들은 기술수출 계약은 유지되기 보다 취소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술수출 계약이 취소될 경우 해당 회사를 일제히 비난하는 투자자들의 자세는 국내 바이오업계의 성장과 사기진작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우려했다.

실제 바이오산업의 특성상 신약후보기술이 상품화로 이어질 확률은 지극히 낮다. 특히 신약후보물질이 상품화로 이어질 확률은 0.01%에 불과하다. 1만개의 신약후보 물질 가운데 단 1개만 신약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여전히 신약기술 수출계약을 체결하면 향후 상품화에 성공할 경우 받을수 있는 마일스톤(개발 단계별 기술료)까지 모두 합한 총액만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기술수출 계약이 취소되면 해당 회사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투자자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한몸에 받는 파렴치한 회사로 낙인이 찍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국내 업계에서 가장 많은 10건의 신약기술 수출을 성사시킨 한미약품 관계자는 “지금같이 성숙되지 않은 국내시장에서는 차라리 기술수출 공시를 할때 수령한 계약금만 공시를 하고 뒷단의 마일스톤을 합한 총액은 밝히지 않는 것도 대안”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기술수출계약을 통해 거둔 계약금은 수출한 기술이 상품화 단계에서 불발돼 계약이 취소되더라도 반환을 하지 않는 확실한 매출이라는 이유에서다. 기술수출 계약을 맺고 나중에 신약개발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계약이 취소되더라도 최소한 시장으로부터 비난은 피할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얘기이다.

업계는 조선,플랜트 수주처럼 신약기술수출 계약을 비슷한 방식으로 공시토록 한 현행 제도가 바이오 업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조선, 플랜트는 한번 수주계약을 맺게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계약이 거의 해지되지 않는 반면 신약기술 수출계약은 임상시험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면 언제든지 위약금을 물지않고 계약을 취소할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가이드라인을 통해 업체가 신약기술 수출계약을 체결할 경우 수취금에 마일스톤을 합한 총계약금액을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때문에 업체들은 기술수출한 신약후보물질이 상품화에 이르지 못할 경우 받지 못하는 마일스톤까지 합해 공시해야 한다. 업계에서 바이오 기술수출 계약 공시에 대해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기술수출계약에 대한 공시는 큰 틀을 정부가 제시하더라도 업체마다 자율적으로 세부내용을 정할수 있게 하는게 바람직하다”며 “단기적으로 시장의 혼란이 있을수 있지만 그래야 시장과 투자자들의 눈높이가 자체적으로 올라갈수 있다”고 말했다.

계약금에 마일스톤까지 합한 총액을 공시하도록 강제하다보니 이를 악용하는 ‘먹튀성’ 바이오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예컨대 신약기술 수출계약을 맺으면서 계약금은 불과 수억원에 그치지만 마일스톤까지 합한 총액은 수백억원에 달한다며 투자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마일스톤까지 포함한 전체 기술수출 계약 총액에서 차지하는 계약금 비중이 1~2% 정도로 미미할 경우 계약 자체를 의심해 봐야한다”며 “상품화가 가능한 시장 잠재력있는 신약후보기술이라면 전체 계약 총액에서 최소 계약금을 5~10% 정도 받아야 적정한 수준”이라고 조언했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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