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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슬아, 다정함이 무기…“내 글 더 정치적이길”

김미경 기자I 2023.03.22 07:10:00

첫 칼럼집 ‘날씨와 얼굴’ 출간
사회가 외면한 이면의 얼굴들 다뤄
차별 부조리 단호히 꼬집지만
다정한 글에 독자들 위로받아
부지런히 질문하는 것 작가의 사명

첫 칼럼집 ‘날씨와 얼굴’을 펴낸 이슬아 작가의 시선은 늘 타인을 향한다. “고유한 개인은 세상에 영향을 주는 힘이 있으며, 서로 연대해야 할 운명의 공동체”라고 말하는 그는 정치는 조금 더 문학적이었으면 좋겠고, 문학은 좀 더 정치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이야기한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기후환경, 소수자, 젠더, 비건(채식주의), 노동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꼭 따라붙는 단어가 있다. ‘갈등’ 내지는 ‘혐오’라는 표현이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민감한 사안들이다.

작가 이슬아(31)는 그럼에도 정치적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기후위기 앞에서 모두는 운명공동체”라며 그 뒤편 얼굴을 불러내는 식이다. 사회가 외면해온 수많은 얼굴과 누락한 목소리를 옮겨 적는 일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책 ‘날씨와 얼굴’(위고)은 이 같은 고민을 묶어낸 그의 첫 칼럼집이다. 지난 2년간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다시 쓰고, 새로 쓴 글을 더해 엮었다. 고통, 차별 부조리를 꼬집은 목소리는 저항의 글로 읽힐 수 있지만, 이 작가의 글은 투쟁과는 결이 다르다. 단호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다정함의 연속이다. 함부로 예단하지 않고, 비관하지 않으며 타인을 통과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간다. 이른바 ‘이슬아스러움’, ‘이슬아식 글쓰기’다.

이 작가는 최근 열린 북토크 현장에서 “나 자신도, 타인도 잘 사랑하고 싶다. 부지런히 질문하는 것, 그리고 나 이외에 호기심을 갖는 것이 작가의 사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글쓰기 방식을 이같이 설명했다.

이슬아는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다. 등단 한 경력은 없지만, 지금까지 12권의 책을 펴냈다. 2013년 단편소설 ‘상인들’로 데뷔한 이후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을 발표해왔다. 대학 시절에는 잡지사 기자, 누드모델, 웹툰 작가 등 독특한 이력도 쌓았다. 그가 작가로 유명세를 떨친 건 2018년 시작한 구독형 메일링 서비스 ‘일간 이슬아’가 큰 호응을 얻으면서다. 학자금 대출을 벌고자 구독료 1만원을 받고 한 달에 20회, 편당 500원에 글을 연재했다. 기성 매체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독자를 모아 출판계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10대들을 가르치는 글쓰기 교사로도 일했다. 2019년엔 헤엄출판사를 직접 차렸다.

독자들은 이 작가의 이런 점에 공감하고 열광한다. 쉬지 않고 부단하게 노력하는 모습에 자신을 동일시하면서도, 유쾌하게 편견을 비틀고 주어를 확장해 나가는 작가의 글쓰기에 위로를 받는다.

이번 칼럼집 역시 작가의 너른 시야를 보여준다. 공장식 사육으로 고통받는 동물,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장애인, 열악한 환경의 택배·청소노동자, 발붙인 땅에서 싸워야 하는 이주여성까지… 그의 마음에 걸렸던 얼굴들을 고루 비춘다. 각종 자료와 법안, 통계, 국회 국정감사 영상까지 꼼꼼히 챙기는 품도 들였다.

그는 “칼럼으로 써야만 하는 이야기가 도처에 있다. 큰소리로 외쳐야 하는 문제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많이 있음을 느낀다”며 “인간의 불행이 기질 탓이 아니라 사회 구조 문제라면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가 왜 나와 상관이 있는지, 우리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신경 써서 글을 쓴다”면서 “내 글이 더 정치적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도 했다.

냉소하는 태도는 늘 경계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 기사와 같이 라디오를 듣다가 낙태죄 이슈로 열띤 토론을 하는 식이다. 이 작가는 “그 와중에 서로의 생각을 물어보고 서로의 배경을 듣고 그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헤아리면서 어느 정도 결론에 도달하는 때가 있다”며 “언제나 타인을 헤아릴 힘을 남겨 놔야 한다”고 말했다.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신념을 잃지 않고 용기를 내야 할 때는 동지를 떠올렸다. “제가 늘 상기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때로 한심하고 게으르다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용기가 나더라고요. 그리고 동지들이 옆에 있는 것도 중요해요. 저 같은 경우는 글쓰기 모임에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동지들을 만났어요. 함께 싸울 수 있는 친구들이죠.”

앞으로도 정치적 글(칼럼)을 계속 쓸 작정이다. “제 첫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의 드라마 판권 계약서에 사인만 남겨놓은 직전 상황인데요. 계약을 해도 반 정도는 엎어진다고 하는데, 계약하면 각본을 직접 쓰게 될 확률이 높아요. 그리고 산문집을 한 편 더 낼 예정이고요. 좋은 글을 쓰면서 오래오래 살아가고 싶어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작가생활을 하는 게 꿈입니다. 나중에 실버 북토크에서 봐요. 꼭.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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