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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pick] 트럼프냐 파월이냐‥더 세진 '금리전쟁'

방성훈 기자I 2019.10.03 08:21:32

美제조업 PMI 10년래 최악…무역전쟁 후폭풍
트럼프 "한심한 연준, 해결책 못찾아" 책임 전가
파월 믿고 벌인 무역전쟁?…4차례 금리인상에 '발등'
파월 “임기 채울 것”…트럼프 압박에 불굴 의지 표명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미국 경기 악화 책임을 놓고 서로를 탓하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기준금리 전쟁’이다.

파월 의장은 올해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연준은 할 만큼 했다. 그러니 경기 침체 우려는 무역전쟁을 일으킨 당사자, 즉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의 기준금리가 여전히 너무 높아서’ 미국 경기가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기준금리가 낮아야, 즉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야 재선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美제조업 PMI 10년래 최악…무역전쟁 당사자 트럼프 “연준 탓”

1일(현지시간) 미국 금융시장에선 경기침체 우려가 대폭 확대됐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이날 발표한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7.8을 기록, 전월(49.1)에 이어 두 달 연속 50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보통 PMI가 50을 웃돌면 경기 확장으로, 밑돌면 경기 위축으로 해석된다.

시장전망치(50.2)에도 크게 못 미쳤고,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6월 이후 10년래 가장 낮은 수치라는 점이 우려를 더욱 키웠다. 시장에선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됐다”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미국만 좋으면 상관없다(아메리카 퍼스트)”며 트럼프 대통령이 벌인 무역전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미국 경제까지 위협하게 돼서다.

ISM은 중국과의 무역 마찰이 1년 이상 장기화하며 실물경기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해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경기 침체 경고 수준이 데프콘3로 격상됐다”며 군사 준비태세에 빗댔다. 전시상태를 의미하는 데프콘1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순히 지켜보는 단계는 지났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침체 우려 책임을 기준금리 인하에 소극적인 연준 탓으로 돌렸다. 그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파월 의장과 연준을 “한심하다”며 싸잡아 비난했다. 그는 “내가 예상했듯, 파월 의장과 연준은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너무 강한 달러를 용인하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 제조업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그들 스스로 최악의 적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공화당 표밭인 러스트벨트(제조업지대)의 제조기업과 노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지지 기반이다. 내년 11월 재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제조업 경기 지표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파월 의장의 발언 직후에 나온 것이다. 파월 의장은 “나는 연준이 올해 더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로 돌아선 게 미국의 경제 전망이 양호하게 유지되는 하나의 이유로 본다”고 강조했다. 자신은 충분히 할만큼 했다는 뉘앙스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미국 경기를 둘러싼 주요 리스크의 책임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정책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연준 덕분에 그나마 미국 경제가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파월 믿고 벌인 무역전쟁?…4차례 금리인상에 발등 찍혀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의 기싸움은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지난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은 자신의 의견을 충실히 따를 것으로 예상했던 파월 의장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지난 6월 연준을 “고집 센 아이”에 비유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파월을 연준 의장으로 지명하고, 이듬해인 2018년 3월 철강·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전쟁 방아쇠를 당겼다. 자신이 임명한 파월 의장이 적극적으로 금리를 내리면 지원사격을 해줄 것으로 믿었다. 당시 미국 언론들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어 파월 의장은 안전한 선택이라며, 그가 트럼프 대통령과 보조를 잘 맞출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340억달러)과 8월(160억달러) 두 차례에 걸쳐 중국산 수입품 500억달러어치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9월부터는 2000억달러어치 중국산 수입품에 10% 신규 관세를 물리기 시작했다. 중국과 본격적인 무역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연준은 지난해 3월, 6월, 9월, 12월 0.25%포인트씩 총 네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격노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가 너무 빨라 미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높은 금리는 부채 부담을 늘리고 이는 경제 성장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하며 “부채 부담을 덜기 위해 저금리를 유지하고, (경제성장) 여력을 남겨두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계속 금리를 올리는데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연준이 낮은 금리를 유지해줘야 주식시장도 부양되고 달러 가치 하락으로 미국의 수출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시나리오다. 내년 11월 재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환경이다. 하지만 연준이 도와주지 않았고, 이날 제조업 지표 악화와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예상보다 일찍 찾아오게 된 건 결국 파월 의장 탓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은 생각한다.

(사진=AFP)
◇트럼프 “美경제, 좋으면 내 덕분…나쁘면 연준 때문”

연준이 파월 의장 주도로 처음 기준금리를 결정했던 때는 사실상 지난해 6월이다. 당시 연준은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으로 파월 의장을 해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를 지명한지 불과 반년여 지났을 때다.

같은해 10~11월 미국 중간선거 직전 주가가 폭락한 뒤부터는 연준과 파월 의장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연준이 미쳤다”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년 간 제로금리를 유지하던 연준이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한 건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이었던 2015년 12월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취임한 뒤 연준의 태도가 달라진 것처럼 묘사했다.

올해 들어 금리 인하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경기 지표가 악화되거나 침체 우려가 불거질 때, 또 주가가 폭락할 때마다 연준 책임론을 꺼내 들었다. 최근에도 지난달 8일 “연준의 고금리 정책 때문에 미국 제조 기업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고, 14일엔 “중국이 아닌 연준이 문제”라고 했다.

경기악화 우려 주범으로 지목된 무역전쟁을 벌인 장본인도, 파월 의장을 연준 수장으로 앉힌 것도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파월 의장을 임명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했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모두 연준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연준이 금리를 내려도 비난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인하폭이 작다는 이유다. 올해 7월에 이어 9월 두 달 만에 금리를 내렸을 때에도 “0.25%포인트밖에 내리지 않았다. 배짱도, 감각도, 비전도 없다”며 큰 폭의 추가 금리인하를 요구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 (사진=AFP PHOTO)
◇파월 “임기 채울 것”…트럼프 압박에 불굴 의지 표명

파월 의장은 올해 초 금리 인상 기조를 뒤집고 “인내심을 가지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또 미국 경제 지표가 호조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7월과 9월 각각 0.25%포인트 금리를 내려 “보험적 금리인하”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파월 의장도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연준의 독립성을 사수하는 것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에게 더는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잭슨홀 연설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기업들의 투자와 자신감을 방해하고 글로벌 성장을 악화시키는 원인이라면, 연준이 통화정책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연준에게 경기 둔화 책임을 떠넘기지도 말라는 의미다. 즉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벌인 미중 무역전쟁은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앞서 지난 7월 하원 청문회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당신 해고야. 짐 싸서 나가라’라고 한다면 뭐라고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내 대답은 ‘노(No)’다. 법으로 정해진 내 기한은 4년이며, 나는 그걸 다 채울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파월 의장의 연준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재선이 가까워질 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는 더욱 거세질 수 있는 데다 경기악화 또는 침체가 현실화될 경우 파월 의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장전문매체 마켓워치는 제조업 지표 부진으로 10월 말까지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종전 40%에서 60%로 크게 뛰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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