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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View]투자 광풍株, 바구니 분류법

유은실 기자I 2023.10.27 06:30:00

스티브 브라이스 SC그룹 최고 투자전략가(CIO)

스티브 브라이스 SC그룹 최고 투자전략가(CIO) (사진=SC제일은행)
[이데일리 유은실 기자] 금융시장에는 구조적인 성장 스토리와 밸류에이션 사이의 줄다리기가 존재한다. 실제로 최근 반도체 업종에서 이러한 상황이 확인되고 있으며, 이는 필자가 투자를 막 시작했던 90년대 후반의 사례를 떠오르게 한다.

90년대 후반 경 인터넷 광풍이 불었고, 믿기 어려운 일들을 볼 수 있었다. 당시 회사 이름에 ‘닷컴’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주가가 재평가됐다.

물론 인터넷에 초점을 두고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로 인터넷의 기반이 된 네트워크를 건설한 기업이었다. 당연히 주가도 대단히 좋은 성과를 기록했다. 2000년 3월 주가가 고점에 달했을 당시 시스코 주식은 2년 전인 1998년 대비 무려 7배 급등한 가격에 거래됐다.

그 후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져 2000년 이후 3년간 83% 급락했고 그 여파는 장기간 이어졌다. 만약 2000년 3월 27일 고점에 주식을 매수했다면, 투자자가 배당금을 재투자한다고 가정해도 2021년 9월이 돼서야 시스코 주식을 통해 플러스(+)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된다.

주식의 성과는 기업의 재무적인 가치를 그대로 반영할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2001년 1분기까지 시스코의 기업이익은 증가세를 보였지만, 그 다음해는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그러나 2002년 말 기업이익이 새로운 고점을 경신한 이후로는 지속적인 증가세를 유지했다.

문제는 기업의 장기 전망이나 인터넷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이 아니라 낙관적 전망을 좇는 투자자들의 과욕에 있었다. 2000년 1분기 시스코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50배 이상이었다.

현재로 돌아와보면, 또 다른 IT 기업에서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려 하고 있다. 지난 실적 발표 직전 엔비디아의 PER는 확정 기업이익 기준 220배 이상이었다. 과거 시스코의 265배보다는 낮지만, 이는 머지않아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엔비디아의 실적은 지난 분기 시장의 기대치를 대폭 상회했고, 현 시장 컨센서스도 향후 성장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사실 엔비디아의 2024년 기업이익이 지금의 3배가 된다고 가정하면 PER는 ‘고작’ 45배에 불과할 수 있다.

이는 기업의 성장 기대에 대한 많은 부분이 이미 가격에 반영돼 있음을 시사한다. 또 기업이 계속 시장 기대치 이상의 실적을 증명하며 주가가 꾸준히 상승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밸류에이션은 시장의 단기 성과를 예측하는데는 그다지 유용한 지표가 아니다. 그러나 투자자가 현재 가격에 투자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반영구적인 손실 리스크에 대해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엔비디아의 내년 기업이익이 감소도 아닌 ‘겨우’ 2배 증가에 그친다면 주가는 급락할 것이다.

어떤 투자든 적정 비중을 조절하며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범위가 좁은 특정 영역에 투자할수록 이러한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투자 기반’과 ‘투자 기회’라는 두 가지 관점을 통해 투자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개별 종목, 특히 변동성이 높은 주식이라면 ‘기회’라는 바구니로 구분해둬야 한다. 투자자들은 매수한 주식이 20%, 50%, 아니면 80%까지 급락한 경우 원금 회복까지 몇 십 년이 걸리면 어떨 것 같은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개별 주식에 대한 접근은 ‘투자 기반’의 한 축으로 볼 것이 아니라, 투자자가 보유한 포트폴리오에서 제한적 비중으로 국한한 ‘투자 기회’의 영역으로 보고 부수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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