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지자체가 임대료 상승률 정한다더니…결국 '임대차법 조례' 백지화

황현규 기자I 2021.07.29 06:01:37

임대차법, 갱신 시 5% 이하만 올리되
'조례'로 지자체별 상한율 달리 적용토록
그러나 지자체 “적정 수준 정하기 어려워”
정부·여당이 5% 확정한 꼴

[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전·월세 계약을 갱신할 때 지역 실정에 맞춰 임대료 상승률 상한선을 차등화하려던 계획이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당초 정부는 임대차법을 제정하면서 지자체가 최종적으로 상한선을 조례로 정하도록 했지만, 결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상한선(5%)이 그대로 가이드라인이 된 것이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서울을 포함한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지차제)가 임대료 상한선을 정하는 조례 제정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임대차법 “조례로 지자체별 상한선 정하도록”

작년 시행된 임대차법에 따르면 계약 갱신 청구권을 행사할 때 5% 이하의 증액(5%룰)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지자체별로 조례를 통해 상한선을 정하도록 위임했다. 지역별로 임대료 금액 차이도 크고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 움직임이 다르니 지자체 현실을 반영한 상한선을 만들라는 취지다. 가령 서울과 제주도의 경우 전세 금액과 상승폭이 다를 테니 실정에 맞게 끔 반영을 하라는 것이다.

임대차법이 시행될 당시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와 지자체는 지역별 상한 적용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라며 “시장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조례상 시행시기 및 적용례를 통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지자체 “조례 제정 어려워”

하지만 조례 제정 논의가 전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큰 이유는 적정한 수준의 상한율을 정하려면 통계가 필수적인데, 관련 통계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세·월세금을 신고하는 임대차 신고제는 6월에서야 본격 시행돼 축적된 자료가 많지 않다는 게 지자체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법 시행 전까지 공식적인 전세금 통계조차 확보해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상한율을 정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전세가격 상승률 통계가 필요하다”며 “임대차 신고제 이후에서야 공식적인 통계가 만들어진다고 판단해 조례 제정을 미뤄왔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임대차법 제정 이후 적정 인상율 관련해 외부 용역을 진행했으나 아직 결과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임대차법이 시행돼 1년이나 지났고 5%룰이 굳어진 상황에서 지자체가 이와 다른 상한율을 정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평가다. 또 형평성과 소급적용 문제 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수도권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여당이 5% 상한율을 정할 당시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며 “같은 자치구 안에서도 전세가 상승률이 다른데 지자체가 나서서 상한율을 다시 정하기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물가상승률·입주물량 등 따져봐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상한율을 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만약 조례가 만들어진 후 이미 계약을 마친 임차인들을 어떻게 적용할 지 등도 논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부동산 전문 김예림 변호사는 “사실 ‘5%룰’ 법이 시행된 뒤에 조례로 세부 상한율을 정한다는 자체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과정”이었다며 “정부와 여당은 지자체의 여건을 고려하도록 하는 취지였겠지만 사실상 5%룰을 정부와 정치권이 확정해서 알려준 것과 다를 바 없었다”고 지적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