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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주회사 내 CVC를 제한적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몇몇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달안에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나 발표 방식 등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지주회사 내 CVC 허용문제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은 찬성과 반대 모두 실증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명분 싸움’만 하고 있는 탓으로 풀이된다. 찬성쪽은 CVC를 통한 벤처투자활성화를, 반대쪽은 CVC허용 후 금산분리 원칙 훼손과 경제력 집중 우려를 내세운다.
기획재정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지주회사 내 CVC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제도 도입시 실제로 이를 설립해 벤처 투자에 나설 만한 대기업들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이다. 인터넷은행법이 KT와 카카오의 시장 진입을 위해 인터넷은행법을 제정했을 때와 대비되는 상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반지주회사가 벤처투자를 해야하는데 현행 지주회사법 규제로 벤처투자를 못한다면 규제완화를 검토할 수 있겠지만, 수요자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를 풀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단지 벤처투자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규제를 풀다보면 효과는 보지 못한 채 사익편취 우려 등 부작용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몇몇 대기업들이 CVC 허용시 이를 도입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특혜 시비 등을 우려해 입을 다물고 있다는 후문이다.
반면 공정위가 주장하는 사익편취 우려도 명확한 근거도 없다. 지주회사가 아닌 일반 대기업도 CVC를 보유하고 있지만, 총수일가가 이를 악용해 승계자금을 마련하거나 일감을 몰아주는 등 악용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
재벌들이 CVC 제도를 악용해 경영승계 자금을 마련하거나 총수일가 재산을 불리는 등 악용할 수있다는 막연한 우려 뿐이란 얘기다.
공정위는 CVC를 허용하더라도 여러 통제장치를 달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형 벤처캐피탈의 지분을 지주회사가 100% 소유하고 벤처투자조합(펀드)이 투자금을 조성할 때 외부 자금을 끌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사전규제다. 벤처투자의 경우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정상가격 등을 산정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사후적으로 공정위가 일감몰아주기 제재에 나서기가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사전 통제가 과도하면 CVC가 효과적으로 운영되기 어렵다며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벤처투자는 위험 투자 영역이라 대기업이 전부 투자 리스크를 안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외부자금이 적절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은 열어놔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쟁법 전공 교수는 “서로 명분만 내세우는 상황에서는 논의가 더 진행되기 어렵다”면서 “특정 기업 특혜우려가 나올 수 있겠지만 대기업의 벤처투자가 막힌 실제 사례를 공개하고 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채운 서강대 교수(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는 “CVC를 통해 재벌 3·4세가 벤처 투자에 나서면서 대기업 경영권 승계와 함께 일감 몰아주기 등에 악용될 소지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여러 조건을 부여하면 CVC가 작동하기 어렵다”면서 “CVC를 전면 도입한 후 사후에 부작용이 발생하면 그때 제도를 다시 손보는 등 사후적인 관리 방식이 있는지 보다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