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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얼음 녹고 철새 떠난 자리, 어느새 봄이 스며들다

강경록 기자I 2020.03.13 05:00:00

인적없는 대자연 속으로 '강원도 철원'
거대한 석벽 병풍 따라, 푸른 물 따라
송대소, 물 위 부교 걷기만 해도 위안
석양 질 무렵 철새들의 황금빛 군무
학저수지,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사

한탄강 최고의 비경으로 불리는 송대소. 한탄강 강 위로 놓인 부교 위로 어느 여행객이 걷고 있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사회적 동물임을 자처하던 인간에게 가혹한 시간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다. 사람과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게 이 캠페인의 핵심. 한참을 고민하다 강원도 철원을 찾았다. 철원은 코로나19, 앞선 아프리카돼지 열병으로 지난해 9월부터 비무장지대(DZM) 안보관광과 생태관광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물론 땅굴 견학도, 평화전망대도, 민통선 출입도 불가능하다. 그래도 지난 겨울 설치한 부교(浮郊)는 일부 남아 있다. 부교를 따라 한탄강을 천천히 걸어볼 참이었다. 인적 드문 한탄강을 걷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것 같아서였다. 손 소독제와 마스크도 넉넉히 챙겨 쇠 비린내 나는 북쪽으로 향했다.

한국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리는 한탄강 ‘직탕폭포’


◇얼음이 녹고 봄기운으로 물든 한탄강

송대소 직벽과 주상절리대 옆으로 놓인 부교를 따라 걷는 여행객
3번 국도를 타고 경기도 연천을 지나 철원으로 들었다. 이어 곧장 한탄강을 향해 달렸다. 한탄강의 이름은 은하수 ‘한’(漢)자에 여울 ‘탄’(灘)자를 쓴다. 우리말로 ‘큰 여울’이란 뜻이다. 한탄강 걷기길의 이름도 ‘한여울길 1코스’이다. 한탄강 기암절벽 위에 만든 길이다. 근대문화유산인 승일교에서 시작해 고석정, 송대소, 직탕폭포까지 이어지는 길. 물론 반대로 걸어도 상관없다. 고석정 관람 동선을 빼면 경사도 거의 없어 노약자와 함께 걷기 좋은 길이다.

직탕폭포를 들머리로 잡았다. 철원 8경 중 하나인 이 폭포는 드라마 ‘덕이’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폭은 80m 정도지만, 높이는 3m 남짓에 불과하다. 높지 않고 옆으로 긴 폭포다. 높지는 않지만, 힘찬 물살이 우레 같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직탕폭포에서 약 300m를 내려가면 송대소다. 한탄강 트레킹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직탕폭포에서 이어지던 낭만적인 풍경이 송대소로 접어들면서부터 갑자기 묵직해진다. 깎아지른 듯한 거대한 석벽의 병풍에 주눅이 드는 탓이다. 지난 겨울 띄워놓은 부교(浮橋) 위를 걷다 보니 거대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초라함이 느껴진다. 송대소는 이무기를 잡겠다고 찾아온 개성 송도 사람 삼형제 중 둘이 물려 죽고 나머지 하나가 이무기를 잡았다는 전설이 깃든 한탄강의 깊은 소. 높이 30m가 넘는 거대한 현무암 기암절벽에는 결대로 떨어져 나간 주상절리들이 촘촘하다.

한탄강은 용암이 흘러 파인 자리에 흐르는 강으로, 평지에서 보면 땅이 갈라진 모습이다


송대소를 지나 승일교까지는 너덜지대다. 제법 강폭이 넓다. 여인네의 허리가 연상될 만큼 부드러운 곡선의 마당바위를 지나면 한탄강 제1경인 고석정이 나온다. 고석바위가 한 폭의 수묵화처럼 우뚝하다. 무려 20m 높이의 장대한 화강암이다. 정상부의 소나무 군락이 수묵화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다. 맞은 편으로 조선 왕들이 사냥하러 왔다가 들러 연회를 베풀었다는 2층 누각도 멋들어진다.

이런 곳에 숨은 이야기 하나 없으랴. 조선시대 의적인 임꺽정이 이곳에 등장한다. 그는 고석정 일대를 근거지로 활동했다. 건너편 산등성이를 따라 석성을 쌓고 자연 동굴에 은신했다. 관군이 몰려오면 꺽지로 변해 물속에 숨었다고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꺽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학저수지는 철새들의 쉼터로 많이 알려진 곳으로, 철마다 수많은 철새들이 이곳으로 찾아온다.


◇자연의 소리로 가득 채운 ‘학저수지’

고석정을 나와 노동당사로 향하던 중 생각지 않은 볼거리를 만났다. 수십마리씩 떼지어 몰려다니며, 먹고 지껄이는 철새떼와 마주친 것이다. 가시울타리도, 철조망도, 엄중한 분단 현실도 날개짓 몇 번으로 가볍게 뛰어넘는 철새들. 이 모습만으로도 철원의 봄은 멋지고, 아름다웠다.

최근에 정비한 듯한 2차선 도로를 따라가니 ‘학저수지’가 나타났다. 동송읍 오덕리에 자리한 이 저수지는 1921년 일제가 설치한 인공 저수지다. 광복 후 1975년 중앙농지개량조합이 확장·보수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면적은 185ha, 저수량은 2만5628t 규모. 철원 오대쌀 주요 생산지인 오덕리와 장흥리 일부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학저수지 이름은 인근 ‘금학산’에서 따왔다. 저수지 인근에 우뚝 솟아 있는 금학산은 ‘학이 막 내려앉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산. 901년 궁예가 태봉을 건국하고, 철원에 도읍을 정할 때 도선이 ‘이 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300년을 통치할 것이다’고 예언했던 한국의 100대 명산 중 하나다. 학저수지가 있는 오덕리 역시 ‘학마을’로 불렸다.

학저수지 위를 날고 있는 백로의 모습


이 저수지에는 해마다 1500여 마리의 백로가 찾는다. 인근 철원평야의 가을 추수가 끝난 뒤 떨어진 벼를 먹기 위해 백로뿐만 아니라 두루미 등 철새들이 쉼터로 찾는 곳이다. 최근에는 저수지 주변으로 둘레길을 설치해 사람도 쉬어갈 수 있게 했다. 약 4.5㎞의 호반길. 데크와 마사토 흙을 깔아 오르막길이 거의 없도록 했다. 노약자도 1시간 30분이면 넉넉히 걸어볼 수 있을 정도다. 주차장에서 출발해 원점 회귀하는 코스라 어느 방향으로 길을 잡아도 상관이 없다. 가까이 고개만 내밀고 있는 수초와 멀리 보이는 저수지 건넛마을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어느 방향에서 돌아보아도 멋진 산수화 한 폭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여기에 철새들의 울음소리와 바람 소리까지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가 가득하다.

석양이 질 무렵이면 철새들이 분주해진다. 석양빛과 어우러진 수면 위의 무대에서 환상을 연출하는 백로사단은 어느새 향연을 마치고 보금자리를 찾아간다. 황량한 호반과 들판은 철새 떼의 날갯짓과 화려한 군무로, 순식간에 생명 가득한 대자연의 풍경으로 거듭난다. 한바탕 군무를 선보인 새떼들은 다시 내려앉지 않고 고공행진으로 산너머 북녘땅을 향해 사라져갔다.

산수화 같은 전경의 ‘학저수지’


◇여행메모

△가는 길= 서울외곽순환도로 의정부 나들목에서 나가 의정부 시내를 거쳐 3번 국도를 타고 대광리역~신탄리역을 지나면 철원 땅이다.

△여행팁= 한국관광공사는 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이 안전하게 여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안전여행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여행 전부터 여행 중, 여행 후까지 3단계로 나눠 숙지하거나 지켜야 할 사항을 수록했다. 여행 전 단계에서는 ▲대중교통보다는 개인 차량을 이용한 여행계획 수립 ▲사람이 덜 밀집한 여행장소 선정 ▲마스크, 휴대용 손세정제 등 준비 ▲개인용 휴대용 컵과 상비약(해열제·감기약 등) 준비 ▲여행지 폐쇄 여부 확인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확진환자 이동경로 확인 등이다. 여행 중에는 ▲적절한 휴식 ▲물을 자주 마시고 익히지 않은 음식 주의 ▲발열과 호흡기 증상 발생시 무리하지 말고 여행 중단 등의 내용을 담았다. 여행 후에는 ▲확진환자의 이동경로와 날짜가 겹칠 경우 발열과 호흡기 증상 발생 시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 또는 관할 보건소에 상담 후 조치하기 등이 있다.

학저수지 철새들의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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