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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 '단독주택' 짓기에 푹빠진 이유는

김민구 기자I 2015.02.27 06:01:01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설날을 앞두고 비보가 전해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이 다시 들어 오려하니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였다. 평생 살던 강남 아파트를 벗어나 구도심의 산 밑에서 한번 살아보기 위해 실험삼아 전세를 들어온 것이 벌써 2년 만기가 됐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오래된 도시의 골목과 시장을 기웃거리고 건강한 산과 신선한 공기라는 자연의 축복을 누리며 잘 살았다. 이 임시적 행복이 좀 더 가기를 희망했지만 새로운 삶의 자리를 찾아 나서야할 시간이 됐다.

여유와 자연에 길들여진 몸은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집이란 땅에 붙어있는 것이라고 새삼스레 깨달은 머리도 고층 아파트로 회귀를 원치 않는다. ‘그래, 지금이 기회인지도 모른다. 강북의 단독 주택에 정착하자’고 결심은 했지만 그 다음이 막막하다. 어디에, 어떤 집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필자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제외하고 아파트를 모두 여섯 번 옮겨 다녔다. 어떤 집을 고를 것인 지에 대한 현재 고민에 비하면 아파트 고르기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강남이냐 아니면 강동이냐를 정하고 방 숫자와 크기를 정하면 끝이다. 사려는 사람, 팔려는 사람도 많아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니 수요 공급의 법칙을 따라 가격도 결정됐다. 마치 백화점 의류코너에서 디자인과 사이즈를 맞춰 보고 기성복을 고르듯 아파트도 쇼핑했다. 베란다를 확장하고 도배를 바꾸는 일 정도는 기성복의 바짓단을 줄이는 정도의 수고였다. 일단 아파트를 고르면 소개한 부동산에서 모든 법적 절차와 융자 서비스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니 마치 배달서비스까지 받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단독주택 고르기는 차원이 다르다. 건축을 전공한 필자는 기존 주택 건물이 선뜻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에 따라 단독주택 살기 결심은 새로 설계해 짓거나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전제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건물은 고려대상이 안되고 땅을 고르는 작업이 중요하다. 우리 가족의 희망에 맞는 땅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시내에서 가까운 위치여야 한다. 예상 외로 도심의 단독주택지는 많지 않다. 특히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 없는 1종 주거지역 필지들은 강북에도 희소하다. 또한 전철이나 버스 정류장까지 도보 통행이 가능한 거리여야 하고 주차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대중교통과 주차가 해결되니 전혀 고려할 사항이 아니지만 오래된 단독주택지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이나 계단이 많다.

그 다음은 대지의 생김새다. 평지가 좋기는 하지만 전망을 얻기 어렵다. 전망 좋은 경사지는 뜨거운 여름이나 눈이 쌓이는 겨울에 곤혹스럽다. 땅의 크기도 문제다. 너무 크면 관리하기 어렵고 너무 작으면 집이 좁아진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주택 가격과 필자의 경제력이다. 이런 여러 조건을 갖춘 땅은 당연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싸다. 게다가 물량이 희귀하니 적정 가격도 어림할 수 없다.

아파트 고르기가 백화점 쇼핑이라면 단독 주택 고르기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 같다. 아파트를 벗어나기가 이처럼 어려운 것일까. 차라리 위치 좋은 새 아파트를 찾아볼까 하는 유혹도 슬며시 손짓한다. ‘아니야, 그래도 나는 건축과 교수가 아닌가’. 다른 이들의 주택을 열채 가까이 설계해준 건축가가 아닌가.

“주택은 주인의 인격”이라고 주장하며 영혼 없는 아파트에서 탈출하기를 권장해온 사회적 책임도 있다. 자기 집을 짓는 것은 자아의 실현이고 건축 문화를 융성하는 기초이며 도시 경관을 향상하는 실천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을 실현하고 결의를 다지기 위해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단독 주택 살기를 실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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