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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최대관심 서울시장 후보 얘기..오세훈

조선일보 기자I 2006.05.11 08:11:19

자존심 센 달동네 소년 중학땐 ‘짱’과 맞짱도

[조선일보 제공]
▲ 오세훈 후보가 고교 수학여행 도중 충남 부여의 한 사찰에서 친구들과 찍은 기념사진.뒷줄 오른쪽 두 번째가 오 후보.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친구들은 “세훈이는 몸이 약했지만 매사 적극적이고 자존심이 센 학생이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1961년 1월 4일 서울 성수동에서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는 아버지 직장 때문에 답십리, 삼양동, 부산으로 전학다니다 서울 미동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오 후보는 “그 무렵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때가 많았다. 산꼭대기 동네에 살면서 호롱불 켜고 우물물 길러 다녔다”고 말했다.

중동중 2~3학년 때 짝이었던 조정호 한국체대 교수는 “세훈이 집은 아주 작고 침침했다. 가재도구가 빽빽해 앉기도 비좁았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부업을 했고, 오 후보는 집에서 관상용 새를 키워 팔아 용돈을 마련했다. 오 후보는 지금도 새를 길러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중학동창 양재영 강원대 교수는 “학원도 못 다닐 정도였는데 자존심이 강해서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공부는 전교 10등권, 싸움도 가끔

중·고교 시절 몸이 마르고 약했다. 대일고 3년 때 수업시간에 매일 존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잠새우’다. 그럼에도 싸움을 가끔 했다. 중학 때 싸움 ‘짱’이었던 친구가 교실 분위기를 흐리자 주번이었던 세훈은 끝까지 “그러지 말라”고 대들다가 결국 흠씬 맞았다. 고교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고교 동창인 임혁 한국경제신문 벤처중소기업부장은 “문과에서 10등 안팎을 했었다”고 했다. 지난 당내 경선 때 연설을 잘못하는 것이 고민이었지만 중학생 때는 교내웅변대회에서 1등도 했다.


▲ 오세훈 후보가 지난 94년 국립발레단의‘해적’에 아라비아 상인역으로 카메오 출연했을 당시 찍은 가족 사진.
◆친구 동생을 아내로

오 후보 고교 친구 중 건강 때문에 진학이 1년 늦은 사람이 있었다. 그 친구가 수술 때문에 오래 결석했을 때 오 후보가 매일 수업 내용을 전해주러 그 집에 찾아갔다. 그 친구 여동생이 있었는데 오 후보와 나이가 같았다. 지금의 부인 송현옥씨다. 오 후보 장모는 그때 오 후보를 사윗감으로 봐뒀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고려대 영문과에 같이 지원했는데, 오 후보만 떨어졌다. 외국어대에 입학했던 오 후보는 1년 뒤 고대 법대로 편입해 결국 캠퍼스 커플이 됐다. 친구들은 “오 후보는 대학 때 다른 여학생과 미팅도 안 했다”고 한다. 결국 24세 때 동기생 중 가장 빨리 결혼했다. 오 후보 부부는 ‘행복한 가정재단’의 홍보대사도 했다. 친구들은 “공처가 분위기가 좀 있다”고 했다. 딸 둘을 두고 있다.

오 후보의 여동생 세현씨도 ‘스타’다. 지난 1월 동부그룹의 최연소 임원이자 첫 여성 임원으로 정보기술(IT) 사업을 총괄하는 상무가 됐다.

◆사법연수원 낙제

오 후보는 “아버지가 먼 손아래 친척이 하던 건설회사에 다녔는데 깍듯이 존대를 하는 것을 보고는 샐러리맨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수필집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 싶다’에서 말했다. 오 후보는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나 사법연수원에서 1년 ‘낙제’도 했다. 기말평가 때 전날 콩비지를 먹고 식중독에 걸려 시험 도중 실려 나왔다. 그 뒤 10년간 비지는 물론 콩 들어간 밥도 안 먹었다고 한다. 법무관 아닌 기무사 장교로 가게 된 것도 그때 시험을 망친 때문이다. 기무사 때 학원사찰을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기무사에 근무한 사법연수원 동기생은 “당시는 그런 일이 없어진 뒤였다. 기무사에서 하는 일을 법률적으로 검토하는 행정장교 같은 역할이었다”고 했다.

◆변호사·국회의원

군대를 마친 뒤 91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94년 부평의 한 아파트 일조권 문제로 대기업과 맞서 이기면서 유명해졌다. 아파트 일조권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이를 계기로 94년 MBC의 ‘오 변호사 배 변호사’ 프로그램을 맡았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시사토론 오늘과 내일’을 진행하면서 대중 스타가 됐다.

환경 운동은 변호사 초기부터 뛰어들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매주 월요일 무료법률상담을 5년 넘게 했다. 당시 환경운동연합 광고 모델도 했다. 99년 고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숙명여대 겸임교수를 했다.

2000년 총선 때 여·야당으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았다. 정치와 교수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환경을 이해하는 국회의원이 필요하다”는 환경운동 동지들 주문에 정치를 결심했다. 2004년 한나라당 물갈이론이 한창일 때 선배 의원들의 불출마를 요구하면서 자신도 서울 강남을(乙) 지역구를 버리고 정계를 떠났다. 정치권의 불법자금을 봉쇄시킨 ‘오세훈 선거법’도 이때 만들었다.

오 후보 친구들은 “세훈이는 남에게 지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오 후보도 이런 성격을 인정한다. 함께 일했던 변호사 동기생은 “누구 비서나 참모는 절대 안 할 사람”이라고 했다.

◆거짓말탐지기

한 신문에서 오 후보가 의원이던 3년 전 오 후보를 진짜 거짓말탐지기에 앉힌 적이 있다. “룸살롱 자주 갑니까?” “가자면 갑니다” “술 마시고 실수한 적은 없습니까?” “예”. 당시 거짓말 반응이 안 나왔다고 한다. 술은 약한 편이다.

2004년 불출마 후 도전한 철인3종 경기는 한 인터뷰에서 “한 번 도전해 보겠다”고 말한 것이 인연이 됐다. 경기협회에서 지원까지 해주겠다는 바람에 피할 수가 없었다. “그 덕분에 20년간 못 끊던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오 후보가 자주 부르는 노래는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다. 함께 소장파를 했던 한나라당 의원은 “열심히는 부르는데 잘 하는 편은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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