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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바보야, 문제는 권력이야

최은영 기자I 2020.03.30 05:00:00

정재형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언론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보루이며 정부를 포함한 모든 권력남용을 견제하는 기능을 한다. 배우 심은경이 주인공 역할을 맡아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작품상을 휩쓴 ‘신문기자’(2019)는 한 마이너 일간지 기자가 정부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의 박진감 있는 영화다. 여기자 요시오카(심은경 분)는
여론조작을 하는 내각부 산하 정보실직원 스기하라(마츠자카 토리 분)의 도움으로 결정적인 정부 문건을 터트린다. 대학설립을 위장한 세균전연구소를 운영한다는 정부계획이다. 개헌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려는 현재 아베 정권의 이슈와 직결되는 내용이다.

결국 기자의 보도로 인해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된다. 기자는 후속기사를 쓰려고 하지만 스기하라는 상부의 지시로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영화는 영웅주의로 빠지지 않고 조직에 맞선 개인의 곤경을 냉정하게 말하며 끝난다.

정보국 실장은 스기하라에게 ‘이 나라에는 민주주의의 형태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뒤는 봐줄 테니 이제부터 모든 걸 잊고 다시 국가에 충성하라고 한다. 그 시각 후속기사를 쓰기 위해 요시오카는 스기하라에게 뛰어가고 있었다. 스기하라는 현실에 복종해야만 하는 자신의 비굴한 처지에 울분을 삼킨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무엇이 인간을 그토록 부끄럽게 만든단 말인가. 생존을 위해 진실을 배반하는 일이다. 두 사람은 신호등 길에서 마주 선다. 요시오카는 스기하라의 절망적인 표정과 뭔가 중얼거리는 입모양을 읽고 분노한다. 그 말은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지만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스기하라는 절망하고 요시오카 역시 분노한다. 영화는 현실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실제 이 영화가 공개된 이후에도, 2017년 아베 정권의 학원 스캔들 폭로기사가 나간 이후에도 아베 정권은 당장 몰락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뉴욕에서 태어났고 엄마가 한국인이라는 배경은 일본사회에 대한 어떤 상징성을 준다. 영화는 일본의 수구적 민족주의를 배격하는 상징을 보여준다. 영화는 일본이 선진화 되는 일이 순혈주의와 수구적 전통주의에서 벗어나 국제화되고 개방된 사고의 휴머니즘을 지향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다.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비리를 고발하는 세력을 응징하는 이유가 국가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서라면, 그들이 바라는 국가란 닫힌 민족주의국가에 다름 아니다. 영화는 우리끼리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으로 국민을 호도해가는 국가권력에 대한 경종으로 읽힌다.

우리 사회에는 진보 세력이 도덕성에 있어 보수 세력에 비해 우월하다는 믿음이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한 오랜 민주화 과정으로 형성된 관념이다. 하지만 조국일가 재판이 진행 되는 것을 보면서 여전히 그 믿음을 고수하기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한번 ‘민주세력’은 영원히 민주적인가. 그럼에도 일부 한국영화에서 여전히 과거 민주세력에 도덕적 우월성 점수를 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진보 세력은 도덕적이고 보수 세력은 부도덕하다? 민주 세력이 반민주정권의 비리를 폭로하고 무너뜨리는, 하나같이 진영논리로만 접근하려는 경향의 영화들. ‘1987’, ‘블랙머니’ 등이 그렇다. 정치상황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국민의 입장에서 보지 못한다.

반면 ‘신문기자’는 도덕성의 기준을 권력 대 국민의 문제로 구도화 한다. 도덕성은 민주냐 반민주냐의 구도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남용하고 진실을 은폐하면 민주든 반민주든 처벌받아야 한다. 어떤 정부든 권력화 되면 국민의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최근 우리 정치권의 피부에 와 닿는 이슈를 담고 있다. 천부 인권과 자유주의에 기반 한 비판적 민주주의. 우리가, 세계가 가야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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