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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공유·학점 교류…생존 위해 '적과의 동침' 나선 대학들

김소연 기자I 2018.05.31 05:30:00

경쟁보다 협력 선택한 대학들, 교육과정·시설·학점 교류하기로
강의시간표 맞지 않아 학생 수요는 미미, 대학 간 거리도 문제
"교육부 평가선 경쟁관계…대학 간 협력 사실상 쉽지 않아"

공유대학플랫폼 예시(사진=서울총장포럼)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학령인구 감소로 위기에 처한 대학들이 합종연횡을 꾀하고 있다. 강의와 교육시설 등을 공유해 비용을 최대한 아껴보자는 계산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주관하는 대학평가와 학생 유치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대학들이 서로 협력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 간 경계 허물자…소모적 경쟁 그만”

30일 국가 교육통계에 따르면 대입정원(55만5041명)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2021학년 대입에서는 고졸자보다 대입정원이 9만5106명 남아돌게 된다. 대규모 미달사태를 우려한 대학들은 강의와 교육시설을 공유하려는 시도에 나섰다. 도서관 등 학교시설을 비롯해 교육과정을 공유해 비용을 줄이려는 의도다.

연세대와 포스텍은 지난 3월 대학 간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올해를 기점으로 모든 학점과 강의를 공유하기로 했다. 양 대학은 △계절학기 때 학생들이 두 학교를 오가며 강의를 듣는 ‘집중 강의제도’ △온라인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인증을 받는 ‘단기교육과정 인증제도’ △교육 프로그램 공동 개발 등을 추진한다. 중장기적으로는 학생들에게 공동 학위를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중앙대·세종대 등 서울소재 32개 대학으로 구성된 서울총장포럼도 오는 7월부터 온라인 수강신청 플랫폼을 만들어 학점을 교류하는 ‘공유대학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공유대학 플랫폼엔 24개 대학이 참여한다. 이들 대학은 △ 온라인 학점교류 확대 △복수의 대학이 참여하는 융합 과목·전공 개설 △도서관·세미나룸·기자재 등 교육자원 공유 등을 추진한다.

◇ 기대에 못 미치는 학점교류 수요

대학 간 공유캠퍼스는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다. 미국 워싱턴D.C.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14개 대학이나 핀란드의 포리(PORI) 컨소시엄, 일본 도쿄 내 국립대학의 ‘4대학 연합구상’ 등이 모두 공유캠퍼스를 구축한 모델이다. 공유캠퍼스를 구축하기로 합의한 대학 간 학사 일정을 통일하고 참여 대학이 모두 비용절감 등의 혜택을 보는 방식이다.

이제 시작단계인 국내 대학 간 공유캠퍼스 구축은 학점교류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학생 편의를 고려한 학사운영부터 대학 간 강의시간표 조정,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재웅 서강대 교육학 교수는 “학생들의 수요가 많지 않고 지리적 여건 탓에 학점교류 활성화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며 “서강대·연세대·이화여대만 해도 신촌에 대학이 몰려있지만 학생들이 듣고 싶은 수업 시간표가 맞지 않으면 학점교류는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학교 간 물리적 거리 때문에 정작 학생들은 다른 대학에 가서 수업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정작 듣고 싶은 강좌가 있어도 소속 대학에서 듣고 있는 강좌와 시간대가 겹치면 ‘그림의 떡’일 뿐이다.

◇ 교육부 평가로 대학 간 경쟁관계도 걸림돌

특히 국내 대학들은 교육부가 진행하는 대학평가를 잘 받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관계다. 공유캠퍼스를 구축하려면 상호 학사운영 정보를 교류해야 하는데 대학 간 경쟁의식이 걸림돌로 지적된다.

교육부는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대학기본역량진단’(진단평가)를 진행해 △상위 60% △상위 61%~80% △상위 80% 미만 대학으로 구분할 방침이다. 평가 결과 상위 60%는 ‘자율개선대학’으로 지정돼 정원을 감축하지 않아도 되며 대학 당 30억~90억원의 재정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상위 61%~80% 대학은 정원감축을 약속해야 국고 지원이 가능하다. 반면 하위 20% 미만인 ‘재정지원제한 대학’은 사실상 퇴출 대상이다. 이들 대학에 입학하는 신·편입생은 국가장학금을 지원받을 수 없거나 일부 제한을 받는다.

진단평가는 △수도권 △대구·경북·강원권 △충청권 △호남·제주권 △부산·울산·경남권 등 5개 권역별로 평가를 진행한다. 권역별 평가로 상·하위 대학이 가려지기 때문에 같은 지역 내 대학은 상호 경쟁관계다.

한 수도권 A대 관계자는 “바로 옆에 있는 대학이 경쟁 대상인데 협력이 쉽게 되겠나”라며 “취업 프로그램을 같이 운영하는 기초적 수준에서 협력이 이루어지고 정보 교류도 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진단평가에서 대학 간 교류에 가산점을 주는 등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유캠퍼스나 연합대학은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이다.

대학 간 소규모 협력부터 학점 교류를 시작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김재웅 교수는 “규모가 작은 학과·전공을 학내 구조조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2~3개 대학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식도 있다”며 “학생 수요가 적은 폐강 위기 수업을 막고 순수학문 을 지키기 위해 교수들이 강의 시간표 구성부터 협력하는 방식으로 학점교류를 시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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