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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특별할 것 없는 그리운 일상, 고즈넉한 풍경서 위로받다

강경록 기자I 2021.04.30 06:00:00

경북 상주의 OLD & NEW 여행
낙동강 제1경, 옛 문인 극찬한 '경천대'
하늘 스스로 만든 경치 '지천대'로 불려
요즘 사람들의 핫플레이스 '경천섬'
수상탐방로, 전망대 등 대표 관광지 몰려

유채꽃이 만발한 4월의 경천섬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즐기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


[상주(경북)=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경북 상주. 한때 내로라하는 위세를 자랑하던 곳이다. 경상도란 지명도 이 지방의 대표적인 고을인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낙동강이란 이름도 상주의 옛 이름인 ‘상락’(上洛)에서 동쪽으로 흘러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쯤이면 옛 상주 땅이 얼마나 번성했는지 짐작이 된다. 하지만 번잡스럽지는 않은 땅이다. 낙동강과 속리산을 낀 호젓한 땅은 몸과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경천대와 낙동강
푸르름 아래, 황홀 그 자체, 상주의 하늘바라기 ‘경천대’

무우정에 앉아 낙동강을 바라보며 오랫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관광객. 무우정에 있노라면, 우당 채득기 선생의 골곡 많은 삶에도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상주에서 가장 이름난 여행지는 ‘경천대’다. 무지산 자락의 암봉이 낙동강 절벽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인데, 그 모습에 이름 짓기 좋아하는 우리 조상들은 낙동강 물굽이가 흘러가는 1300리 중에서 가장 빼어나다며 ‘낙동강 제1경’으로 불렀다.

경천대로 가려면 경천대 국민관광지를 찾아가야 한다. 경천대의 원래 이름은 하늘이 스스로 만들었다고 해서 ‘자천대’(自天臺)로 불리다가, 우당 채득기 선생이 하늘을 떠받친다는 뜻에서 ‘경천대’(擎天臺)라 지었다고 한다. 솔숲 돌담길부터 108개 돌탑이 어우러진 산책로와 무우정(정자), 정기룡 장군의 용마설화로 유명한 용소, 맨발체험장, 황톳길, 자전거길 등을 경천대를 중심으로 잘 꾸며놓은 공원이다. 한나절 가족 나들이에 부족함이 없다.

경천대는 낙동강 물굽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암릉이다. 기암절벽과 낙동강, 그리고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소박한 모습이다. 그럴듯한 정자나 전망대 하나 없다. 화려함에 익숙해진 우리보다 소박한 그들의 눈에는 아마도 절경으로 다가왔을 터. 물론 그들이 보았을 경천대의 모습도 지금과 달랐다. 지금의 낙동강은 하류 상주보에 갇혀 강물이 강폭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물굽이마다 은빛 모래사장이 햇볕에 반짝거렸다. 아마도 옛사람들은 경천대에 앉아 그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자천대’라 이름 붙인 것에 지금의 우리가 토를 달기 어려운 이유다.

경천대 암석 사이 새겨진 비문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 속리산 화양계곡의 암벽에도 새겨져 있는 글로, 조선의 하늘과 땅, 그리고 해와 달이 명나라 ‘숭정’, 즉 황제의 것이라는 뜻이다. 명나라 숭배에 빠진 조선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경천대에 바짝 붙어 있는 정자인 ‘무우정’에서 잠깐 여유를 가져보자. 정자에 걸터앉아 있노라면, 병자호란의 치욕을 못 잊고 북벌을 꿈꿨던 조선시대 학자 채득기의 굴곡 많은 삶에도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채득기는 병자호란 당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잡혀갈 때 수행한 인물이다.

채득기는 청나라에서 돌아와 무우정 근처에 집을 짓고 은거했다. ‘경천대’란 이름도 이때 지은 것이다. 8년 만에 되돌아온 그는 울분을 삭이며 북벌의 의지를 다지다 마흔셋의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경천대에 오르는 바위에 동그랗고 네모나게 파인 것은 채득기가 사용했다는 돌그릇 세 개다. 동그란 것은 연을 키우던 것, 가운데는 세수하던 것, 큰 네모는 약물을 제조하던 용도라고 전해진다.

해질무렵 비봉산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경천섬의 모습. 4월의 어느날, 경천섬은 분홍빛 꽃잔디와 노란 유채가 색감을 더하고 있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은 ‘경천섬’


상주에서 최근 뜨는 곳은 경천섬이다. 상주보 상류에 위치한 약 20만㎡의 작은 하중도(河中島·하천 중간에 형성된 퇴적 지형). 상주보 건설과 함께 새로 태어났다. 과거 철새들이 머물면서 번식했다고 해서 ‘오리섬’으로 불렸다. 경천섬은 낙동강 양쪽에서 다리를 설치해 누구나 쉽게 건너갈 수 있게 했다. 경천섬 주차장이 있는 서쪽 도남동에서는 ‘범월교’, 중동면 회상리 회상나루관광지에서는 ‘낙강교’라는 이름이 붙은 보도현수교다.

범월교를 건너 섬으로 들어가면 여러 갈래의 산책로를 따라 아기자기한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지금은 분홍빛 꽃잔디와 노란 유채가 색감을 더하고 있다. 길이 약 1km, 폭 350m가량의 섬은 산책하기에 크지도 작지도 않다. 소나무 그늘에 벤치가 놓여 있고, 잔디밭도 곳곳에 조성해 놓아 호젓하게 소풍을 즐기기 그만이다. 경천섬에서 낙강교를 건너면 회상나루터관광지다. 회상나루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면 비봉산 아래 낙동강 물 위로 끝없는 수상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상주보 일대 관광지를 연결한 국내 최장의 수상탐방로(975m)다. 2019년 개장했다. 훼손되지 않는 낙동강 천혜의 자연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유채 만발한 4월의 경천섬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그리운 여행객에게 잠깐의 여유와 봄날의 추억을 안긴다.


경천섬과 낙동강을 동시에 조망하려면 ‘전망대’를 찾아가는 것이 좋다. 회상나루관광지 뒤편 비봉산 중턱에 자리한 학전망대는 이름처럼 학(두루미)을 닮은 전망대다. 전망대 앞까지 차량진입이 가능해 편하게 오를 수 있다. 원래는 낙동강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전망대에 올라서면 상주보에서 경천대까지 낙동강의 파노라마 전경이 펼쳐진다. 특히 일몰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또 난간이 유리로 돼 있어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 아찔한 스릴도 느낄 수 있다.

전망만 본다면 비봉산전망대가 더 장쾌하다. 비봉산 중턱에 자리한 청룡사까지 자동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청룡사 뒤편으로 난 산악자전거도로를 따라 조금만 오르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이곳에 올라 서면 경천섬이 바로 발아래에 펼쳐진다. 경천섬의 산책로와 섬 앞뒤로 흐르는 물줄기도 뚜렷하게 내려다 볼 수 있다. 옛 문인들은 이곳에서 달 뜨는 풍광을 즐기며 시를 읊었다는데, 실제로 해질녘 노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감동이 파도치듯 밀려온다.

△가는길=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내려가거나, 경부고속도로 청원분기점에서 청원~상주 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상주에 닿는다. 경천대와 경천섬으로 간다면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청원~상주 간 고속도로가 만나는 상주나들목으로 나오는 편이 가깝다.

학전망대에서 바라본 경천섬과 낙동강. 전망대에 올라서면 상주보에서 경천대까지 낙동강의 파노라마 전경이 펼쳐진다. 특히 일몰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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