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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학은 한스 모겐소가 1930년대 체계화했다. 이후 고전적 현실주의는 발전을 거듭해 공격적 현실주의, 방어적 현실주의 등으로 분화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연원을 찾기도 하는 데 춘추전국시대 난맥상 역시 그 뿌리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최 교수는 세력이 커진 진나라를 현상타파국가로 규정했다. 패권을 잡으려 한 이른바 ‘도전국’이다. 진나라는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중원에서 홀로 우뚝 서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주변국들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안보 위협에 대해 약소국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바로 ‘연합’이다. 소진이 선봉에 섰다. 그가 “(진을 제외한) 여섯 나라 영토는 진나라의 다섯 배나 되고 여섯 나라의 병사는 진나라의 열 배가 된다”고 설득한 끝에 합종군은 네 차례나 진나라를 공격할 수 있었다.
문제는 동맹국들이 서로를 믿기란 어렵다는 데 있다. 국제정치의 ‘무정부성’에 기인한다. 진나라는 이런 상호 불신의 고리를 적극 공략했다. 장의는 “연합해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보다는 진나라와 함께하는 게 훨씬 유리하리라”고 제후들을 꾀어냈다. 믿지 못할 타국과 손을 잡지 말고 진나라의 우산 속에 들어오라는 주장이다.
결혼동맹을 불사하는 등 진나라의 방해 공작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게 먹혀들어가면서 합종국끼리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여섯 나라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대세가 기운 뒤였다. 최 교수는 “신의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입장이 현실주의”라고 했다.
가까운 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먼 나라는 멀리하는 사고에서 벗어난 것도 진나라를 승리로 이끌었다. 진나라의 범저는 초나라·연나라·제나라와 선린관계를 유지하는 대신 한나라·조나라·위나라를 먼저 치는 원교근공책을 제시했다. 가운데 낀 국가를 양측에서 협공할 수 있는 방책이다. 최 교수는 “이 같은 생각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전략적 기반이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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