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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나야 바꾼다"…서울지하철 승강기 관리 '사후약방문'

김보영 기자I 2018.08.20 06:30:00

에스컬레이터 고장 연간 600건…하루 두 번 꼴
10년 이상 노후 승강기 60%…162대 20년 넘어
시설물 교체 지침 無…고장 많은 기기 위주 교체
서울교통공사 "매달·매년 정기안전진단 실시 중"

서울 지하철 2·4·5호선이 지나가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노후 에스컬레이터 교체 공사로 5호선 환승 통로가 폐쇄된 지난달 18일 오후 시민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툭하면 고장이네요. 타지도 못할 걸 왜 만들어 놓은 건지.”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승강장 출구 계단을 오르던 주부 김정자(가명·56)씨는 승강장 출구 에스컬레이터에 부착된 고장 및 브레이크 교체 안내문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지난달에 폐쇄한 5호선 환승통로 에스컬레이터도 20년이 넘었다던데 노후한 장비를 부품만 바꿔 방치하니 고장이 잦은 것 아니겠나”며 “고장도 고장이지만 사고라도 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승강기 고장 하루에 2번꼴…10년 넘은 장비가 10대 중 6대

에스컬레이터 등 서울 지하철 내 잦은 시설물 고장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승객들이 적지 않다. 10년이상 된 장비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는 등 시설 노후화 영향이 크다.

서울교통공사는 한정된 예산 때문에 장비교체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기 교체 시기 등 뚜렷한 지침 없이 고장이 다량 발생한 장비 위주로만 교체를 검토하는 ‘사후약방문’식 관리도 노후 장비 방치를 못지 않게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1~8호선에서 발생하는 에스컬레이터 고장 건수는 연간 600건 정도로 하루에 2번 꼴이다.

승강기 안전사고도 적지 않다. ‘지하철 1~8호선 안전사고 발생 현황(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하철 내에서 발생한 안전사고 총 2672건 중 역구내 전도사고(812건·30%)와 출입문 사고(764건·29%)에 이어 가장 많이 발생한 사고 유형이 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 등 승강기 안전사고(566건·21.8%)다.

분석에 참여한 한국철도학회는 “안전규정 미준수로 인한 사고 못지 않게 노후화한 시설과 정비불량으로 정비가 미흡해 발생한 사고도 적지 않았다”며 “노후된 승강기와 기기 이상을 방치할 경우 대형책임사고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울 지하철 내 설치된 승강기 시설의 절반 이상은 제작된 지 10년이 넘은 노후 장비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하철 1~8호선에 설치된 승강기 2492대(엘리베이터 802대·에스컬레이터 1690대) 중 2009년 이전에 제작된 제품이 60.6%(1512대)다. 2000~2009년에 설치된 승강기가 54%(1350대)로 절반이 넘었고, 20년 이상 사용한 승강기도 162대(6.5%)나 됐다.

◇“고장 多 발생한 장비 위주 교체”…관리 기준 모호

노후 승강기 비중이 높은 것은 이들을 교체할 뚜렷한 시기와 기준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은 탓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에스컬레이터 등 지하철 역 내 시설물을 교체하는 뚜렷한 시기나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다”며 “장비를 교체할 수 있는 예산이 한정돼 있다 보니 통상 고장이 발생하면 부품 교체가 우선적으로 이뤄진다. 통상적인 승강설비의 사용 가능 연한도 15~20년으로 긴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사 자체적으로 매월, 매년 정기점검을 실시하며 15~20년 이상 되고 고장이 다량 발생한 승강기를 대상으로 △가동시간 △이용승객 수 △노후도를 검토해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해 진단 결과에 따라 교체 대상을 선정하고, 예산 범위 내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교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승강기안전공단에 따르면 주택건설촉진법 및 공동주택관리령 시행규칙에 따른 승강기의 내구연한은 18년으로 제작 연한이 10년이 지나는 시점부터 노후화가 진행 중인 승강기로 분류한다. 15년 이상된 승강기는 교체가 필요한 노후 승강기로 분류한다.

대한산업안전협회 관계자는 “사용 연한이 10년을 넘기면서부터 승강기 내부 부품의 마모가 진행돼 점차 고장이 잦아질 수밖에 없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교체할 부품도 구하기 어려워지는 만큼 보다 명확한 부품 및 시설물 교체 시기를 정하고 정밀 안전 점검 대상의 기준을 강화해 노후 승강기들이 방치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부품 돌려막기로는 시민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며 “장비의 노후화 과정을 그대로 방치하면 특정 시점을 넘겼을 때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여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기 어렵다. 승객의 안전과 직결한 만큼 예산을 최대한 확보해 노후한 시설물들의 신속히 교체가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올해까지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비롯해 2호선 성수역 등 10개역 에스컬레이터 34대와 신설동역 등 3개역 엘리베이터 5대를 교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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