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목멱칼럼]112년 그 후

김정민 기자I 2020.03.06 06:00:00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12년 전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은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 날의 발걸음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기억하고 연대하는 시간이자, 노동과 권리의 가치를 기리는 날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성노동자들은 달라진 삶을 살고 있을까? 적지 않은 세월 많은 이들이 여성의 권익 신장과 양성평등을 위해 애써왔지만, 여전히 여성의 삶은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특히 경력단절 여성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동안 경력단절 여성의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여성 인적자원 개발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이 있었다. 폴리텍이나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실시해 온 직업교육도 마찬가지다. 성과도 있었다. 폴리텍 여성재취업과정의 경우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6230명이 교육을 이수했고, 그중 절반은 일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이들의 재취업 현황을 들여다보면 다소 불편하다. 여성가족부의 ‘2019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력단절 이후 첫 일자리의 임금은 경력단절 이전에 비해 월 27만 원 낮고, 경력단절 여성이 상용직으로 일하는 경우는 절반(55.0%)에 불과하다. 어렵게 재취업 문턱을 넘었다 하더라도, 저임금, 비정규직 등 질 낮은 일자리로 하향 이동하는 모양새다. 신속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여성의 경력단절 고리를 끊고, 재취업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일자리의 질을 높여야 한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이미 남성을 앞질렀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구조 변화 덕에 여성이 강점을 발휘할 분야가 갈수록 늘고 있다.

산업 기술 현장은 그간 여성 인력 진출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만큼 활용할 여지가 더 많은 셈이다. 유망한 신산업분야 기술교육을 확대해 여성 인력을 고부가가치 생산에 투입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얼마 전 폴리텍에서 여성재취업과정을 이수하고 3D 프린팅과 모델링 분야 전문 강사로 일하고 있는 졸업생을 만났다. 4년제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휴대전화 제조회사에서 개발자로 10년간 경력을 쌓았지만 육아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2년간 경기 안양에서 인천까지 수업을 들으러 다녔어요.” 의지가 강했던 만큼 40세의 나이도, 일터를 떠났던 공백기도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 전공 기술 심화 프로그램이 있다면 더 전문적으로 역량을 키워보고 싶다며 다시 찾은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쳐났다.

우리가 재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은 실제 매우 다양한 이력과 절박함을 갖고 있다. 개인별 역량과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이 필요한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산업 트렌드와 선호도를 반영한 여성 친화 신기술 직종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선택의 기회를 넓혀야 한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여성 일자리 환경과 인력 수요에 대한 조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단기적인 취업 성과만 놓고 교육과정을 개설하기보다 구직자의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장기적인 안목도 필요하다. 경력단절 구직자가 산업 기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와 활용능력) 교육을 강화하는 건 어떨까. 경력자나 고학력자의 눈높이에 맞는 심화 교육과정 도입도 검토해 볼 만하다. 다만 육아나 가사 등으로 시간 제약이 있는 경력단절 여성을 위하여 장기 교육보다는 온라인 선행 학습 후 실습 위주의 압축 교육이 대안일 수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생산 가능인구 급감에 대응해 여성인력이 주요 노동력이자,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성을 사회경제적으로도 동등한 대우를 하고 있는지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좋은 일자리는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누려야 할 마땅할 권리이다. 이에 대한 깊은 고민과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 재교육 현장에서 그들의 절박함을 마주하며 세계여성의 날의 의미를 더해 응원의 장미를 보낸다.

<이석행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