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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위기…왜 JY 눈에만 보이나[생생확대경]

이준기 기자I 2022.10.25 06:30:00
[이데일리 이준기 산업부 차장]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 놈에 속지 마라, 일본놈 일어나고 되놈(중국) 되(다시) 나온다…’라는 1945년 해방 직후 민중 사이 유행했던 이 민요의 구절은 당시 약소국이었던 우리의 복잡한 외교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지금은 어떨까. 70여 년이 훌쩍 지나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우리가 처한 지형은 별반 차이가 없다. ‘동맹 복원’을 외치며 화려하게 정권을 탈환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메이드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기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바이든발(發) 반도체와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보듯 미국은 글로벌 패권경쟁과 국내 정치를 위해서라면 동맹도 가차없다.

외교·안보는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 탈(脫) 세계화와 4차 산업혁명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지금, 그 힘의 원천은 그 나라, 그 기업의 기술에서 나온다. 물론 미국이 겨냥하는 건 우리가 아닌, 중국의 기술 굴기다. 핵심은 반도체다. 반도체는 중국이 여전히 전 세계에 의존하는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다. 중국은 매년 석유보다 반도체 수입에 더 돈을 많이 쓴다. 중국이 사활을 걸며 매년 반도체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 이유다. 스마트폰·노트북 등 IT기기는 제쳐놓고 보안감시기술·AI 등을 활용한 항공모함·핵무기 등 안보자산 측면에서 봤을 때도 반도체 산업을 누가 지배하느냐에 따라 21세기 패권국은 갈릴 수밖에 없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반도체 업계가 악당들의 손에 장악되는 건 미국에 악몽”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미국의 대중(對中) 압박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단기적으로 중국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 혼선 등의 악재가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론 반도체 수요국에서 생산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시간도 벌었다. 그러나 골든 타임은 길지 않다. 미국의 대표적 메모리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이 건재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우리 기업들을 우군으로 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유의 글로벌 네트워크로 민간외교관으로 불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해외출장 때마다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이라며 경영전략 최상단에 기술을 괜히 올려놓은 게 아니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빚어진 강대국들의 자국우선주의 기조 속 무엇이 우려된다는 걸 본능적·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을 법하다. 여기에 메모리반도체 선두인 삼성전자로선 초격차 기술로 이 분야를 확고히 한가운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포함한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대만 TSMC를 따라잡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은 상황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정치권이 반도체를 대하는 행태를 보면 허탈하기 짝이 없다. 당장 우리 기업들의 초격차 기술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술개발(R&D) 등에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도 모자랄 판에 그 흔한 규제들조차 철퇴시키지 못하고 있다. 국회 반도체 특위는 여야 정쟁 속에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고 한다. 올해 8월 반도체 기업의 시설투자에 대한 세제혜택 등을 담아 야심 차게 내놓은 반도체 특별법(K-칩스법)은 여전히 국회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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