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굽이마다 옛이야기 넘실…봄날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다

강경록 기자I 2020.04.17 05:00:00

충북과 경북을 넘어 옛길을 걷다
퇴계 이황 위폐 모신 옥동서원에서 시작해
백옥정~세심정~저승골~임천석대 지나
천년고찰 반야사에서 여정 마무리
총 5.2km 거리, 2시간 남짓 걸려

충북 영동 반야사 문수전에서 바라본 구수천 물길.


[영동·상주=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숨어 있는 길이 있다. 길의 한쪽 끝은 둥글게 물길이 휘감은 충북 영동의 절 반야사이고 반대쪽은 경북 상주의 옥동서원이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넘나드는 이 길은 금강 상류의 물길을 따라 줄곧 이어진다. 그 물길을 두고 영동 쪽에서는 석천이라 부르고, 상주 쪽에서는 구수천이라고 부른다. 경상도에서 시작한 길이 충청도에서, 충청도에서 시작한 길이 경상도에서 끝나는 셈이다. 계곡을 따라 봄날의 한복판으로 난 아름다운 오솔길로 걸어 들어간다. 물길을 끼고 이어지는 그윽한 정취와 전봇대 하나 없이 숲과 물로 이어지는 경관, 차고 맑은 물소리 사이로 끼어드는 새소리를 따라가는 길이다.

경북 상주 백옥정에 올라 바라본 구수천과 수봉리 마을


◇구수천 굽이마다 옛이야기도 흐르다

충북 영동과 경북 상주를 가로지르는 구수천 팔탄 천년 옛길. 세월교 뒤로 암벽이 펼쳐져 있다.
이 길의 이름은 ‘구수천 팔탄 천년 옛길’이다. 다소 길고 어색하다. 이유가 있다. 구수천이 경북 상주서 발원해 백화산 틈새를 찾아 물길을 냈고, 산허리를 따라 맴돌고 휘돌아가며 여덟 개의 여울목이 있어 ‘팔탄’(八灘), 대몽항쟁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는 뜻에서 ‘천년 옛길’이라고 붙였다. 길은 한 방향으로 이어져 있어 충북 영동 반야사나, 경북 상주 옥동서원을 들머리로 삼아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걸어볼 차례다. 상주 모동면 수봉리 옥동서원에서 백옥정에 올랐다가 세심정·세심석을 거친 뒤 구수천을 따라 독재골산장~저승골 입구~난가벽~구수정~임천석대~반야사 옛터~너덜을 지나 충북 영동 황간면 우매리 반야사에서 마친다. 거리상으로는 약 5.2km. 천천히 걸으면 2시간 남짓한 거리다. 길은 물길을 따라 이어져 있고, 굽이마다 이름이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옥동서원(사적532호)은 동네를 감싼 산자락 과수원 뒤에 자리하고 있다. 황희 정승과 황매헌, 황효원의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의 서원 중 하나다. 옥동서원을 뒤로하면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다. 길은 두 가닥이다. 하나는 옥동서원 왼쪽 오솔길로 진입해 산줄기를 타고 가는 옛길, 또 하나는 오른쪽 농로를 따라 걷다가 백옥정 정자를 향해 나무 데크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첫 번째 길은 경사가 완만해 사색하며 걷기 좋고, 두번째 길은 단숨에 용머리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수봉리에서 반야사 옛터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물길 넘어가는 다리


용머리 정상으로 향한다. 처음부터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게 부담스럽지만, 몇 걸음 옮기면 금세 백옥정이다. 걷기길에서 살짝 벗어난 용머리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백옥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정자와 다를 바 없지만, 막상 올라서면 사방이 확 트여서 상주 들녘을 조망하기에 제격이다.

다시 백옥정을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면, 본격적인 걷기길이 이어진다. 경사가 급한 잣나무 숲길을 내려가다 보면 복잡한 마음을 물로 씻는다는 ‘세심석’(洗心石)이 나온다. 성인 남성 스무명도 거뜬하게 올라갈 정도의 너른 바위다. 이 바위에 올라 눈을 감으면 구수천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면서 잡념이 사라진다. 세심석을 지나면 구수천 옆으로 나무데크와 시원한 그늘 숲길이 2km가량 이어진다. 장성한 굴참나무와 물푸레나무, 당단풍나무가 계속 이어진다. 하늘까지 덮어주는 울창한 나무 때문에 그냥 걷기가 아까울 정도다.

‘저승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80m 길이의 출렁다리


◇경상도에서 충청도를 넘어가다

물소리를 따라 걷다보면, ‘독재골산장’이 나타난다. 길게 줄지어 선 밤나무 사이로 이어진 길에 한없이 빠져든다. 복숭아꽃이며,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여기에 바닥은 부드럽고 폭신해 걷는 느낌이 좋다. 숲길이 끝나자 ‘저승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80m 길이의 출렁다리다.

출렁다리를 건너 5분가량 내려가면 저승골 입구다. 몽골제국의 6차 침입 당시 호국길 인근의 산중에서 고려승병들이 민간인과 함께 몽골군에 맞서 대첩을 거뒀던 곳. ‘저승골’은 몽골군을 유인했던 곳이고, 이어진 ‘전투갱변’은 승병들이 매복했던 곳이다. 이어 병풍을 두른 듯한 절벽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한 난가벽을 지나면 갈대 무성한 개울 건너편에 임천석대가 솟구쳐 있다.

북과 거문고를 잘 다루던 고려 악사인 임천석은 고려가 망하자 이곳으로 들어와 높은 절벽 위에 대를 만들고 거문고를 연주하며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태종이 음률에 능통한 그를 거듭하여 부르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명사를 남기고 투신했다. 그의 충절을 흠모한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임천석대’(林千石臺)라고 불렀다.

충북 영동과 경북 상주를 가로지르는 구수천 팔탄 천년 옛길. 세월교 뒤로 암벽이 펼쳐져 있다.


임천석대에서 강을 건넌다. 돌다리의 이름은 세월교다. 세월교 건너 망경대 절벽 아래로 영천이 건너다보인다. 세조가 나무사자를 타고 홀연히 나타난 문수보살의 권유로 목욕한 후 피부병이 나았다는 곳이다.

다시 영천 앞에서 5분 남짓 가면 너덜겅을 지난다. 백화산 기슭에서 흘러내린 돌무더기가 쌓인 곳이다. 반야사에서 이쪽을 바라보면 수풀과 경계를 이룬 너덜겅이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 같다고 해서 반야사 호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너덜겅에서 10분쯤 더 가면 천년고찰 반야사에 이른다. 반야사는 문수보살의 전설이 서린 천혜의 전망대 문수전이 있다. 요사채 뒤로 구수천(석천)을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절벽 위에 전각 하나가 위태롭게 서 있다. 거대한 절벽은 세조 앞에 나타난 문수보살이 꼭대기에 올라 두루 살펴봤다는 망경대다. 여유롭게 10분 정도면 문수전에 이른다. 문수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문수보살이 두루 살폈다는 아름다운 풍경 그대로다. 백화산의 육중한 산세가 이어지고, 봉우리는 서로 중첩돼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산을 비집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석천과 호랑이 돌무더기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마치 신선들이나 봄직한 선경 중 선경이다. 이곳에서 구수천 팔탄 천년 옛길에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반야사 뒤편으로 너덜겅이 꼭 호랑이 모양이다


◇여행팁= 한국관광공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안전여행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여행 전에는 △개인 차량을 이용한 여행계획 수립 △사람이 덜 밀집한 여행장소 선정 △마스크, 휴대용 손세정제 등 준비 △개인용 휴대용 컵과 상비약 준비 △여행지 폐쇄 여부 확인 △확진환자 이동경로 확인 등이다. 여행 중에는 △적절한 휴식 △물을 자주 마시고 익히지 않은 음식 주의 △발열과 호흡기 증상 발생시 여행 중단 권고 등이다. 여행 후에는 △확진환자의 이동경로와 날짜가 겹칠 경우 발열과 호흡기 증상 발생 시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 또는 관할 보건소에 상담 후 조치하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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