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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사건들

송길호 기자I 2024.02.19 06:20:00

박주희 로펌 제이 대표변호사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의 선고가 있는 날이면, 고정으로 출연하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항상 받는 질문은 ‘오늘 판결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세요?’다. 담당 재판부도 아니고, 사건 기록을 살펴본 것도 아닌 상황에서 함부로 유죄, 무죄를 단정 짓기에는 조심스러운 일이라 매번 에둘러 두루뭉술하게 대답하기 일쑤다.

그런데 가끔은 선고 결과가 충분히 예상되는 경우도 있다. ‘정치적으로 셈을 해보니’ 혹은 ‘요즘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니’ 와 같이 법률적 판단에 근거한게 아니라 속으로만 생각할 뿐 차마 방송에서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변호사들끼리 사석에서 법원이나 검찰을 욕하며 할 법한 이야기들이다.

법을 다루는 한 사람으로서 법치주의 국가에서 모든 수사와 재판은 법과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싶지만 정치적인 판단이나 교묘한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대다수의 사법절차는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분명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더구나 유명인을 둘러싼 사건이나 정치적 사건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정치적 환경이 바뀔 때까지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 재판이라든지 반대로 공교롭게도 정치적 환경이 바뀌자 빠르게 진행되는 수사처럼 말이다. 원칙대로 진행되는 평범한 사건들을 매일 접하며 사는 필자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언론에 보도되는 수사와 재판만 경험하는 일반 국민들로서는 우리나라 사법절차에 대한 회의나 불신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하다.

최근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의 선고가 줄줄이 이어졌다. ‘사법농단’ 사건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 전부 무죄가 선고되었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 회장에 대해서도 전부 무죄가 선고되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혐의점에 대해 전부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것 외에도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의 인력이 투입된 ‘초특급 수사’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재용 회장의 경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 ‘수사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소했다. 그리고 형사사법의 대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이 무너진 우리나라에서는 수사가 개시되었다는 언론 보도만으로도 이미 범죄는 기정사실화 되고, 수사가 길어질수록 범죄자 낙인 효과는 짙어진다. ‘사법농단’, ‘부당합병’이라는 수식어가 만들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 물론 아직 1심의 결론만 나온 상황이니 상급심에서 재판의 결과가 뒤바뀔 가능성도 있고, 검찰이 기소했다고 해서 언제나 유죄가 나오는 것은 아니니 반드시 이례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규모 수사로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사건들이 재판에서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오는 상황을 보며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해보게 된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검찰이 부당하게 정치적 수사를 한 것이라고 검찰을 비난할 수도, 법원이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라고 법원을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비난은 검찰이건 법원이건 두 조직 모두 법과 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환경에 눈치보고,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린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수사와 눈치보기로 요동치는 판결이 반복될수록 검찰과 법원에 대한 불신은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 논란을 명료하게 종결짓기보다 오히려 사회적 혼란과 반목을 가져올 뿐이다.

수사든 재판이든 모두 ‘과거의 사건’을 토대로 한다. 다시 말하면 달라질 것 없는 이미 벌어진 일을 재료로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료를 대하는 태도와 평가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어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법은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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