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탄력을 받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새로운 목표와 중점과제를 내놨다. ‘여럿이 만드는 미래, 모두가 연결된 미술관’이란 목표를 세우고 실로 방대한 사업계획을 내보인 거다. 백지숙(55) 관장이 취임한 지 4개월여만이다. 호크니 전이야 백 관장 취임 전에 기획했다지만 운영진의 입장은 아무래도 남달랐을 거다. 뼈대라도 한 번 짚어보자.
“2022년까지 3개관을 더 지어 서울 전체로 퍼지는 ‘네트워크형 미술관’ 시스템을 구축할 거다. 국제적 네트워크에 기반한 메갈로폴리스 현대미술관을 지향한다” “2011년 수립 이후 제대로 실행이 안 된 ‘중장기 발전계획(2021∼2031)’을 다시 세우겠다.” “관습적인 명화전을 벗어나 호크니 전 같은 걸작전을 2년마다 홀수 연도에 열겠다. 짝수 연도에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로 전문성을 확보하고.”
네트워크형이라. 그럴듯하지 않나. 이제 10개관을 채울 “신규 분관시대를 맞아 하이브리드형 프로그래밍을 통한 연계를 강화”할 거라니. 그런데 어째 좀 공허하다. 정확하게는 ‘척 와 닿질’ 않는다. 거대한 계획일수록, 그것이 국공립 배경을 업을수록 진해지는 불안감. 외용은 거창한데 뒷감당은 안 되는, 스케치는 괜찮은데 채색이 영 어설픈 대작을 본 듯한. ‘그런가 보다’ 듣고 있으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국제적 네트워크 기반의 메갈로폴리스 현대미술관 지향’을 이해할 만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는 거다. “공간의 장소적 구분보다 권역·기능·역사적 구분으로 나누고 서로 이어지는 미술관을 의미한다”는 설명은 잘 들었다. 하지만 미술관 좋자는 하이브리드고 네트워크지, 미술관 찾는 시민이 체득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 아닌가.
‘어떻게’가 빠진 것도 공허한 계획에 일조를 했다. 그림 한 점만 옮겨도 돈 문제가 따라붙을 텐데 그 현실적인 대책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다. 미술관 짓는 게 땅만 파면 되는 일도 아니고 예산은 어찌 확보할 거며 유지는 어찌하겠다는 건지. 청사진만 그려놓으면 따라다니며 계산서 끊는 담당이 따로 있는 건지.
이 야심찬 계획을 발표한 미술관장의 임기 역시 거치적거리는 문제 중 하나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이 3년 임기로 뭘 시작이나 해보겠느냐는 쓴소리는 여러 번 했지만 여긴 더 심하다. 서울시립미술관장의 임기는 2년이니까. 연임이 가능하다지만 그건 가봐야 아는 일이고. 다시 말해 이렇게 크게 벌인 판조차 ‘관장 책임 아래 진행’이란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단 얘기다.
외형 넓히기도 좋고 네트워킹도 좋다. 하지만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콘텐츠가 아닌가. 여기에는 ‘어떤 전시’도 포함되지만 ‘어떤 계획을 어떻게 구체화’도 포함된다. 그래서 어려운 거다. 매번 관람객 입맛에만 맞출 순 없는 노릇이고, 국공립에 들이대는 구체화의 잣대는 더욱 매서우니. 시스템 확보란 건 더 어렵다. 화려한 문구가 아니라 실전이니까. 관람객이 35만명이든 100명이든 흔들림 없이 굴러가게 하는 게 진짜 시스템이니까.
게다가 이번 ‘35만명’은 양날의 검이다. 무엇을 하기도 무엇을 하지 않기도 힘들다. 이 정도는 해내야 한다는, 안으론 애매한 목표가 생기고, 밖으론 희한한 롤모델이 생기니까. 그뿐인가. 기록이란 게 만들어지면 나머진 대충 용서가 된다. 전시장 작품보다 전시장 인파를 보고 온 듯한 고충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로 몰고 간 관객차별적 행태에도 그냥 눈감아주게 되니.
남의 잔칫집 찾아 분위기 깨자는 시비겠나. 작정하고 큰 스케치를 꺼내놨으니, ‘이번엔 제대로 채색했더라’고 제발 한 줄 쓸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