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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예정된 55살 ‘세운상가’는 어떤곳?

신수정 기자I 2022.04.24 09:59:56

일제강점기 연합군 폭격화재 모면위한 공터
판잣집, 집창촌 철거후 1967년 건물 완성
80년대 전자기기 메카로 황금전성기 맞아

[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세운상가 계획을 180도 뒤집었다. 개발과 보존 사이를 오가던 중 개발인 ‘철거’에 방점을 찍었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열린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 현장 기자설명회에서 5구역 현장 답사를 하고 있다.
세운상가의 유래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한다. 세운상가 부지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였던 1945년 일제가 연합군의 공습이 화재로 번지는 것을 박겠다는 명분으로 조선인이 모여 살던 주거지를 철거해 만든 공터였다. 넓이 50m, 길이 1180m의 공터가 생긴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되자 이 공터에 가난한 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판잣집을 짓고 난전을 벌이고 결국에는 ‘종삼’이라는 집창촌까지 생겼다. 1960년대 도시 개발 붐이 일면서 이 지역에 대규모 주상 복합 단지를 짓기 위한 계획이 수립됐다. 1966년 지역 철거 작업이 시작되고 1967년에 건물이 완성됐다.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이곳의 이름을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는 곳’이라는 뜻의 ‘세운世運’이라 지었다.

이 건물에는 가스보일러,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상층부 아파트의 인기는 대단했다. 사회 저명 인사는 물론 연예인 등이 거주했다. 하층부에는 전기 제품을 비롯해 공구, 가전 가게들이 입주했다. 1980년대 개인용PC의 전성기 때는 8, 16비트를 포함해 모든 소프트웨어의 카피 제품들이 이곳에서 유통됐다. 한때 ‘이 상가를 한 바퀴만 돌면 미사일, 잠수함, 심지어는 우주선도 만들 수 있다’는 말까지 돌 정도로 한국 전자기기의 메카였다.

그러나 쇠락은 금방 찾아왔다.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세워지고, 2003년 송파 가든파이브가 만들어지면서 대부분의 상가가 이전했다. 상층부의 아파트에 거주했던 원주민들은 강남, 이촌동으로 떠났다. 그들의 빈자리는 상가의 기술자들의 숙소와 가내공장으로 변했다.

점점 슬럼화 되어가는 세운상가는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개발과 보존 계획이 번갈아 수립됐다. 2008년 세운전자상가는 세운초록띠공원으로 재탄생했지만 2012년까지 상가 철거 계획은 금융위기로 무산됐다. 그리고 2014년 리모델링 보존형 개발을 추진했고 이후 2017년 세운상가는 재개장하고 청년 창업, 벤처기업 등이 입주했다.

이제는 다시 철거계획이 세워졌다. 오세훈 시장이 다시 취임하면서 상가를 허물고 도심 녹지공간으로 재창조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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