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수의 경세제민]경제 살리기와 행복지수 높이기

신하영 기자I 2022.01.13 06:15:00
[국민대 전 총장·명예교수]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작년 7월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했다. 1964년 UNCTAD 설립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UNCTAD가 경제력만으로 선진국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됐기에 이런 성과를 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것은 지난 수십 년간 국민의 땀과 노력이 이루어 낸 성과다.

우리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경제이다. 경제는 기원전인 맹자 시대에도 국가적 관심사였다. 오죽하면 맹자도 항산(恒産) 있어야 항심(恒心)이 생긴다고 했을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먹을 것이 있어야 마음속에 도덕과 윤리도 생긴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인 모양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선거철만 되면 경제문제가 부각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 후 신년휘호로 경세제민(經世濟民)을, 노무현 대통령은 ‘2만 달러시대 진입’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을 선거구호로 삼았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정치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했다지만 경제는 더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반도체굴기’로 시작된 미국과의 갈등은 우리 경제를 어려운 상황에 내몰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는 벌써 2년째 우리를 괴롭히고 있고 자영업자·소상인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오는 3월 20대 대통령 선거도 결국은 경제에 대한 비전으로 판가름 날 공산이 크다.

경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관계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관계이다. 경제가 아무리 활성화 돼도 사회관계가 망가진다면 경세제민은 물 건너가기 때문이다.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명목 GDP기준으로 우리나라 경제력이 세계 9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국가행복지수 전망은 149개국 중 62위, OECD 37개국 중 35위에 그쳤다. 시험성적으로 따지면 경제는 합격점이지만 사회관계는 낙제수준이다. 경제력은 세계 9위인데 행복지수는 바닥인 걸 보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코로나로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뚱맞은 소리일지 몰라도 우리에게 항산은 있으되 항심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코로나는 결국 끝나겠지만 경제 수준과 행복지수의 격차는 팬데믹 종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가처분 소득 지수인 지니계수를 보면 우리나라 소득 불평등은 그리 심각한 편이 아니다. 우리 지니계수는 2018년 기준으로 0.34를 기록했다. 알다시피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가 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 멕시코, 칠레, 터키 등 지니계수 0.4를 넘는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의 불평등 정도는 낮은 셈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저조한 이유는 삶의 질을 따질 때 그만큼 경제적 풍요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퓨 리서치에서 선진국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우리나라는 17개국 중 ‘물질적 풍요’를 가장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7개 국가 중 14개 국가가 ‘가족’을 삶의 가장 중요 요소라고 뽑은 것과 대비된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다른 선진국의 그것과 크게 다른 것 같다. 결국 경제활동에 따라 격차가 나면 이 격차가 다른 국가보다 사회관계에 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다른 나라보다 지니계수가 행복지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렇게 물질적 성취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아직 외형의 화려함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큰 탓이다.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그리고 사회관계를 유지하려면 물질적으로 성공해야 한다. 어떤 자동차를 타는지, 어떤 동네에 살고, 자녀가 어떤 학교에 다는지, 배우자의 출신 대학과 직장이 어디인지에 따라 사회적으로 받는 대우가 다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때가 많다. 참견하고, 간섭하고, 판단해서 불쾌감을 주고 집·자동차·학벌 등을 캐 뭇고 이런 외형적 조건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그러니 외형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독일제 특정 모델 차량이 독일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판매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외형수준 유지를 위해 지출이 많다 보니 한국에 사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고 행복지수는 낮게 형성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존재’보다는 ‘소유’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였다. 상대방과 내가 가진 소유의 차이에 따라 평가 받고 때론 행복해지기도, 불행해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 분열과 갈등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우리사회의 물질 소유 가치 때문이다. 이로 인해 차별 받고 상처 받아서 생기는 ‘원한’ 심리가 원인일 수 있다.

사회에 속한 수 천만 명의 심리를 변화시키는 일은 영화 ‘미션임파서블’처럼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임기 5년 동안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쉽지 않다. 개인은 자유를 얻었지만 국가는 집행력을 잃었다. 그러나 이를 개탄하지 말자. 이것이 국민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속도가 늦어도 강제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경제 살리기, 사회관계 회복, 물질가치에 대한 인식 등 어느 하나의 변화도 녹록지 않다. 대통령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총체적 노력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기적뿐만 아니라 사회관계의 재창조라는 기적도 만들어 보자.

진정한 선진국은 UNCTAD에서 인정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풍요만으로 선진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풍요 속에 뒤처진 사람들을 도와주는 문화, 상대를 배려하는 문화, 외면보다 내면을 중시하는 문화가 꽃을 피울 때 사회관계는 회복되고 행복지수도 높아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지수와 행복지수의 격차를 좁혀야 하며, 차기 정권의 목표도 이것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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