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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칼럼] 꿈틀대는 잠룡들, 국가 비전은 있는가

허영섭 기자I 2019.01.18 06:00:00
차기 대권을 노리는 예비주자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겨우 3분의 1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건만 벌써 그 이후의 역할을 떠맡겠다며 서서히 몸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대선이 2022년으로 예정된 상황에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고 지지층을 규합하려면 시간적 여유가 그렇게 넉넉한 것도 아니다.

며칠 전에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함으로써 야당 정치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더 나아가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나설 것이라 하니, 정계 입문과 동시에 대권 행보에 시동을 건 셈이다. “꽃길만 걷지 않겠다”는 그의 소감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지금껏 자유한국당과 거리를 두고 있다가 최근 입당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나 홍준표 전 대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의 행보도 주목된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여권 인사들의 움직임이다. 이낙연 총리가 ‘국정 2인자’라는 프리미엄을 살려 차기 경쟁에서 앞서가는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도 대권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한때 잘나가는 듯했던 이재명 경기지사는 온갖 스캔들로 발목을 잡힌 듯한 양상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거취도 눈길을 끈다. 본인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정계은퇴를 선언하고도 번복했던 전례가 없지 않았던 만큼 상황 변화에 따라 여러 가능성이 점쳐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음 정권은 여야 어느 쪽으로 돌아갈 것인지가 관심사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20년 집권도 짧다”며 연속 집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자유한국당 입장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지난 대선의 패배를 딛고 정권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가다듬고 있다. 지난 선거에 나섰던 안철수 전 의원이나 유승민 의원의 재등판 가능성도 주목되지만 현실성은 점차 떨어지는 분위기다.

여야 정당의 입장에선 정권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되찾느냐가 초점이겠으나 국민들의 입장은 상당히 다르다. 과연 다음 대통령은 국민을 편안하게 살도록 이끌 수 있겠느냐 하는 소박한 희망이 거의 전부다.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마음 편히 지낸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은 까닭이다. 아무리 멋진 공약을 내세웠어도 끝내 공염불로 그친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약속도 취임 초로 그치기 일쑤였다.

따라서 다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은 미리부터 약속을 해야 한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다짐이 그것이다. 선거 때 자신을 도와준 지지세력이나 이념을 앞세운 특정 계층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치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과의 소통도 필요하지만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책도 경계해야 한다. 국정 최고지도자로서의 역할이 결코 쉽지 않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나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영국 메이 총리가 직면한 상황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지금 문 대통령도 국정지지율의 하락세를 경험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국가의 품격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비전이 요구된다. 세계가 급격히 변해가는 상황에서 우리도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뒤떨어지기 마련이다. 눈길을 국제무대로 돌려야 하며, 과거의 역사인식에 얽매여 있기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민의 자긍심과 삶의 질도 더욱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영예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고독한 자리다. 국가의 운명이 그 한 사람의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엇갈릴 수도 있다. 대통령이 나라를 잘못 인도한다면 자칫 극심한 혼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맬 수밖에 없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다음 대권을 꿈꾸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이러한 역사적 소명의식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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