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전 1승 19패...연봉조정 신청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이석무 기자I 2021.01.13 11:00:00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한국 프로야구 연봉조정 신청 제도의 또 다른 이름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큼 선수가 이기기 어렵다는 의미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는 선수가 9년 만에 나왔다. 주인공은 kt wiz의 우완투수 주권(26)이다. 주권은 지난 11일 KBO에 2021년 연봉조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시즌이 끝나고 kt는 주권에게 올해 연봉으로 2억2000만원을 제시했다. 반면 주권은 3000만원 많은 2억5000만원을 요구했다. 주권의 2020시즌 연봉은 1억5000만원이었다.

주권은 지난해 kt의 불펜 에이스로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리그 최다인 77경기에 나와 6승 2패 31홀드 평균자책점 2.70을 기록했다. 리그 홀드왕도 차지했다. kt가 창단 후 처음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데 있어 그의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당연히 팀 내 투수 고과 1위를 받았다.

주권은 2019년에도 71경기에 나와 75⅓이닝 6승 2패 25홀드, 평균자책점 2.99를 기록했다. 2년 연속 70경기-70이닝 이상 던졌다. 2년 동안 마운드에 오른 경기 수가 148경기나 된다. 팀 전체 경기 수의 절반 이상을 책임졌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주권과 구단의 금액 차이는 겨우 3000만원이다. 겉으로 보기에 충분히 조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주권으로선 구단 제시액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주권은 2019시즌 뒤 연봉이 63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8700만원 상승했다. 그런데 2020시즌 뒤에는 7000만원이 오른 2억2000만원을 제시받았다. 객관적인 활약상은 2019시즌보다 2020시즌이 더 나았는데도 연봉 인상액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구단도 할 말은 있다. 구단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봉 평가 시스템을 통해 선수들의 연봉을 결정한다. 이 시스템을 벗어난 연봉을 책정하면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에서 문제가 생긴다. 자칫 팀 내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

주권과 kt는 오는 18일 오후 6시까지 원하는 연봉의 산출 근거 자료를 KBO에 제출해야 한다. KBO총재가 구성하는 조정위원회는 25일까지 구단이나 선수 가운데 한쪽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연봉조정 결과에 구단이 불복하면 선수는 자유계약으로 풀린다. 반면 선수가 불복하면 임의탈퇴로 묶이게 된다.

만약 마감일까지 구단이나 선수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조정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서류를 제출한 쪽의 의견이 받아들여진다. 마감일까지 선수 및 구단 모두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조정 신청이 취하된 것으로 본다.

KBO에 연봉조정을 신청한 kt wiz 우완투수 주권. 사진=뉴시스
‘승리확률 5%’ 선수는 상처만 입는다?

연봉조정신청 제도는 구단과 선수 간의 연봉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제도다. KBO 규약 제75조에 따라 연봉 협상에 이견이 있는 프로 3년 차 이상 선수나 구단은 총재에게 연봉조정신청을 할 수 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연봉조정 제도를 본떠 1984년부터 시행됐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초로 연봉조정신청을 한 선수는 1984년 강만식(당시 해태타이거즈)과 이원국(당시 MBC청룡)이었다. 그 두 선수를 시작으로 2012년 이대형(당시 LG트윈스)까지 총 98명이 신청서를 냈다. 주권은 연봉조정신청을 한 99번째 선수가 됐다.

선수가 신청서를 내더라도 대부분은 조정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구단과 연봉 합의를 한 뒤 중도 철회했다. 실제 조정위원회까지 간 경우는 20번 있었다. 이 가운데 19번은 구단 제시액으로 결정됐다. 선수 측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은 2002년 유지현 현 LG트윈스 감독이 유일하다.

당시 LG트윈스 팀 내 연봉 고과 1위였던 유지현은 구단으로부터 1000만원 삭감된 1억9000만원을 제시받자 이에 반발해 연봉조정신청을 냈다. 결국 조정위원회는 2000만원 오른 2억2000만원을 요구한 유지현의 손을 들어줬다.

가장 뜨거웠던 연봉조정신청 주인공은 2011년 이대호(롯데 자이언츠)였다. 이는 실제 조정위원회가 열렸던 마지막 사례이기도 하다.

당시 타격 7관왕에 오르며 한국 프로야구를 뒤흔들었던 이대호는 전년도 연봉인 3억9000만원에서 3억1000만원 오른 7억원을 요구했다. 반면 롯데는 2억4000만원 인상된 6억3000만원을 제시했다. 조정위원회는 논란 끝에 구단 제시액으로 연봉을 결정했다.

조정위원회 결정이 나온 뒤 이대호는 “이제 우리 후배들은 이제 아무도 구단과 싸우지 않으려 할 것이다”며 “누구를 위한 조정위원회인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이대호의 말대로 이후 선수들은 연봉조정신청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조정위원회는 지난 10년간 유명무실했다. 이대호는 이듬해 FA 자격을 얻지 미련없이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와 계약했다.

연봉조정에서 선수로서 유일하게 승리한 경험이 있는 유지현 현 LG트윈스 감독. 사진=연합뉴스
◇ ‘조정위’ MLB는 선수노조와 사무국, KBO는 총재가 구성


냉정하게 볼 때 조정위원회까지 가면 구단이 유리한 게 사실이다. 메이저리그는 최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야구에 종사하지 않는 변호사 3명으로 조정위원회가 구성된다. 미국중재협회가 중재위원을 추천하면 선수 노동조합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각각 기피 인물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3명을 결정한다.

반면 한국 프로야구는 조정위원회 구성 권한이 KBO총재에 있다. KBO총재는 프로야구 구단 대표이사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선출한다. 구단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과거 구성된 조정위원회를 살펴보면 KBO 사무총장, KBO 고문변호사 등 KBO 내부 인사가 포함돼 있다. 선수 입장에선 중립성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준비하는데도 서류 작업에 익숙한 구단과 달리 선수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선수들이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점은 그전보다 나아진 점이다.

선수 입장에선 연봉조정에서 이겨도 걱정이다. 2002년 선수로서 유일한 승리를 거뒀던 유지현은 불과 2년 뒤인 2004년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만 33살이었다. 명목상 은퇴 이유는 기량저하와 부상.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연봉조정 과정에서 생긴 당시 프런트와의 대립이 후폭풍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2011년 연봉조정 신청 후 조정위원회까지 갔던 롯데자이언츠 이대호.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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