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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의 이슈Law]아이돌보미는 근로자가 아닐까

이정훈 기자I 2020.01.31 02:17:00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퇴직금, 최저임금, 주 52시간,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수당, 주휴수당, 연차휴가, 육아휴직, 출산휴가 등 수많은 법적 보호와 혜택도 근로자가 아니라면 받을 수 없다. 같은 일을 같은 돈을 받고 하더라도 근로자인지 아닌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근로자. 근로기준법에서는 직업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라 해석하고 있다.

언제, 어떻게, 얼마나 일할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으면 근로자가 아니고 결정할 수 없으면(=타인이 결정하면) 근로자라는 것. 법원은 형식이 아닌 실질을 중요시한다. 이 때문에 형식적으로 위임계약을 체결해도 실질적으로 종속관계가 있으면 근로자로 인정된다.

반대로 근로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사업자로 인정될 수 있다. 아이돌보미가 대표적이다. 실제 작년 6월 광주고등법원은 근로계약 체결, 4대보험 처리, 근로소득세 납부 등 사정이 있더라도 아이돌보미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정부는 지난 2012년 아이돌봄지원법을 제정, 가정의 아이돌봄을 지원하고 있다. 지역별로 서비스 제공기관을 지정하고 그 기관에 소속된 아이돌보미를 각 가정에 보내고 있다.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자가 아이돌봄서비스 홈페이지에서 서비스를 신청하면 해당 지역 서비스기관은 소속 아이돌보미에게 관련 정보를 문자메시지 등으로 제공한다. 아이돌보미가 관련 정보를 보고 스스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서비스기관에 통보하면 이 기관은 돌봄서비스를 신청한 가정에 해당 아이돌보미를 연계해준다.

아이돌보미가 서비스제공기관에 출퇴근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돌봄서비스를 제공한 후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아이돌봄 통합업무관리시스템에 접속해 언제부터 언제까지 서비스를 제공했는지 기록하면 된다. 아이돌보미들은 실제 일한 시간에 비례해 수당을 받는다.

고용노동부와 여가부는 아이돌보미를 근로자로 보고 관련 제도를 운영해왔다. 예컨대 여가부는 지난 2013년 9월부터 월 60시간 이상 활동하는 아이돌보미에 대해 4대보험에 가입하게 하고 1년 이상 근무한 아이돌보미에 대해서는 퇴직금을 지급토록록 했다.

그럼에도 작년 6월 광주고등법원은 아이돌보미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봤다. 근로계약의 본질은 근로자가 자기 노동력을 사용자 처분에 맡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서비스제공기관은 돌봄서비스를 신청한 가정에 대한 정보만 문자메시지 등으로 제공할 뿐 실제 서비스를 제공할지 말지는 아이돌보미가 결정하니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것.

문제는 정말 아이돌보미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아이돌보미가 마음대로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곤 해도 3개월 이상 돌봄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복무규율ㆍ징계절차에 따라 불이익을 받고, 3회 이상 연속해 보수교육을 받지 않으면 자격이 정지되며, 한번 신청해서 일정이 정해지면 그 일정을 바꿀 수 없어 충분히 종속관계가 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이번 판결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 문제와도 밀접히 관련돼 있다. 우버, 그랩, 요기요, 배달의민족 등 플랫폼 노동자도 대개 플랫폼을 통해 일감 정보를 받고 본인이 언제, 어떻게 일을 할 것인지 직접 결정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노출빈도수 조절, 패널티 부과 등을 통해 노동이 강제되는 경우도 다수 있다. 결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다.

형식적으로 근로계약서 작성, 퇴직금 지급, 4대보험 가입,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등을 했다면 서비스제공기관이나 아이돌보미 모두 아이돌보미가 근로자라는 전제 하에 사업을 운영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형식이 아닌 실질을 이유로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형식 아닌 실질을 중요시 하는 것은 통상 근로자로 취급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와 근로자의 권력관계 때문에 형식적으로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사용자, 근로자 양자 동의 하에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면 실질을 이유로 근로자성을 부인할 때에는 보다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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