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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현실에도 있는 일…제2의 문동은 없어야”

김형환 기자I 2023.02.08 07:00:00

서울동부교육지원청 박종민 변호사 인터뷰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으로 오는 경우도”
당사자 화해 장치 부족…강제로 할 수 없어
눈싸움하다 학폭위…학교장종결제 강화해야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제2의 문동은(송혜교)을 만들지 않는 게 제 일이죠.”

서울시동부교육지원청 소속 박종민 변호사가 지난 3일 서울시동부교육지원청 청사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서울시동부교육지원청 제공)
서울시동부교육지원청 소속 박종민 변호사는 이같이 말했다. 박 변호사는 교육지원청 소속으로 교육법률지원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운영과 관련해 법률 자문이나 행정심판·행정소송과 관련한 업무를 맡는다. 학폭위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2020년 3월 1일부터 각급 학교에서 각 교육지원청 단위에 설치됐다. 교사·법률가·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학폭위는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하고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조치를 내린다. 쉽게 말해 박 변호사는 드라마 ‘더 글로리’ 학교폭력 가해자인 박연진(임지연)을 처벌하고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을 보호해주는 위원회에서 법률자문을 맡고 있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약 20년간의 준비를 거쳐 가해자에 대한 복수하는 내용의 드라마로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다. 박 변호사는 드라마 ‘더 글로리’처럼 피해 학생이 사적으로 보복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만큼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피해 학생이 나중에 가해 학생으로 다시 학폭위로 오는 경우가 있다”며 “학폭위에서 제대로 이 학생들의 분쟁을 없애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학폭위가 피해·가해학생들의 제대로 된 화해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로 2가지를 꼽았다. 우선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화해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학폭위는 가해 사실에 대해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처벌하는 것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화해를 만들어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각급 학교·교육청에서 화해조정을 지원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이 거부하면 그만인 상황이다. 박 변호사는 “교육지원청이나 교육 당국에서 화해를 위한 여러 장치를 준비하고 있고 준비돼 있는데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다”며 “화해의 장으로 나오기 싫다는 학생을 강제로 끌어낼 수가 없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사소한 분쟁까지 모두 학폭위로 올라와 업무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학년도 서울시교육청에 접수된 학교폭력 사건은 1204건으로 이중 854건(70.9%)가 ‘4주 이내에 학폭위 심의를 해야 한다’는 교육부 지침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심의기간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학폭위의 과도한 개최’를 꼽았다. 그는 “일례로 겨울에 눈이 오면 학폭위가 대거 열리겠다는 우려가 든다”며 “학생들끼리 눈싸움을 하다가 기분이 상해서 학폭위가 열리는 경우도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이렇게 학폭위 관련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순·경미한 학교폭력은 학교장이 직접 해결하는 학교장종결제가 확대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장종결제는 △2주 미만 정신적·신체적 피해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복귀된 경우 △지속적 학교폭력이 아닌 경우 △보복행위가 아닌 경우에 한해 학교전담기구를 활용, 학교장이 학교폭력 사건을 자체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학교장종결제가 시행 중이지만 피해 학생 측에서 학폭위 개최를 원하지 않아야지만 종결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갈등이 너무 심각하다보니 피해학생도 그렇고 가해학생까지 학교장종결제에 반대한다”며 “소소한 분쟁까지 모두 징계하고 선도 조치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소한 분쟁의 경우 학교장종결제를 확대해 학폭위 업무 부담을 줄여줘 심각한 사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박 변호사의 설명이다.

박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문동은(피해자)과 박연진(가해자)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박 변호사는 문동은에게 “감성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상대박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면서도 “복수를 함으로써 내 삶이 망가지면 안되고 그것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다.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박연진에게는 “자기는 순간의 재미와 장난이겠지만 그게 남에게는 씻지 못할 상처를 준다”며 “어른들이 주변에서 항상 지켜보고 있으니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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