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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냐"…백선엽의 '잠들 곳' 나라의 뿌리를 묻다

정다슬 기자I 2020.07.13 00:10:00

독립운동가 선양단체·군인권센터 대전현충원 안장" 반대
통합당·육군협회 "서울현충원에 모셔야"
"공과 과는 구분해야" 12일 여권 조문행렬 이어져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국군의 아버지이자 6·25 전쟁의 영웅을 서울현충원에 모시지 못한다면 이게 나라냐”(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독립군을 토벌하던 악질 친일파를 후대에 6·25 공로가 인정된다고 국가나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영면 장소인 국립 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이 정령 나라다운 나라인가”(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100세 일기로 지난 10일 별세한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기로 하면서 논란이 거세다. 백 장군의 6·25 전쟁 당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이는 서울현충원 안장을 주장했고, 백 장군의 친일 당시 행적을 문제 삼는 이는 현충원 자체의 안장에 대해서 문제삼았다. 대한민국의 굴곡진 역사에 어떤 의미에서든 한 획을 그은 인물의 영면은 대한민국의 존재 의의 자체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서울현충원 만장 탓에 대전현충원에 영면

△1953년 6·25전쟁 당시 백선엽 장군의 모습 [사진=AFP제공]
12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백 장군의 안장 장소는 유족 측의 신청에 따라 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으로 확정됐다.

육군은 15일 오전 7시 3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영결식을 한 뒤 같은 날 오전 11시 30분 대전현충원에서 안장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가묘지법 제 5조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현역군인 사망자, 무공훈장 수여자, 장성급 장교, 20년 이상 군 복무한 사람, 의사상자 등을 현충원 안장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보훈처와 육군은 한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자 6·25전쟁 당시 부산교두보를 지켜 역전의 전기를 마련한 그 공로를 볼 때 현충원 안장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013년 미8군 사령부가 백 장군을 명예사령관으로 임명하는 등 백 장군은 ‘한·미 동맹’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11일 빈소에도 로버트 에이브람스 현 주한미군사령관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관이 잇따라 조문을 하고 “영웅이자 국가의 보물”이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야당인 통합당은 백 장군을 위해 개인 묘역을 별도로 마련해서까지 서울현충원으로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서울 현충원은 만장이다. 육군 예비역 단체인 대한민국육군협회 역시 “백 장군은 평소 6·25 전쟁 전우들과 함께 묻히고 싶어 했다”며 서울현충원 안장을 주장했다.

◇NYT “백선엽, 조국서 분열된 인물”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12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반면 군 인권센터는 “백 장군이 가야할 곳은 현충원이 아닌 ‘야스쿠니 신사’”라고 맞받아쳤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제국의 군인으로 복역해 독립군을 탄압한 그가 어떻게 현충원에 갈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백 장군은 1943년부터 3년간 독립군 토벌에 특화된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대원으로서 활동했다. 일제 패망 때 그의 신분은 일본 제국의 만주지역 괴뢰국인 ‘만주국군 중위’였다.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백 장군의 이같은 이력을 바탕으로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25개 독립운동가 선양단체인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회장 함세웅 신부) 역시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데도 간도특별대 출신이 국군의 뿌리가 되고 구국의 영웅이라 함은 헌법을 거스르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흔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수진 의원 등 몇몇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친일 파묘’(破墓·무덤을 파냄) 법안을 준비하면서까지 백 장군은 물론, 이미 현충원에 안정된 친일 행적자들의 묘를 이장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다만 청와대와 민주당 지도부는 ‘공과(功過)는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하고 12일부터 본격적인 조문 행렬에 나섰다. 청와대에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 국가안보실 김유근 1차장, 김현종 2차장 등이 조문을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역시 이날 백 장군을 빈소를 찾았다. 아울러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고위 당·정·청 협의회를 마친 후 밤 9시께 조문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장례식장에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백 장군은 한국전쟁의 치열한 전투를 이끈 인물이지만, 그의 조국에서는 깊이 분열된 인물”이라며 “그에 대한 논란은 한국과 미국의 한국의 근현대사를 읽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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