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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까지 1조원 CB 만기 도래…코스닥 상장사 자금 조달 빨간불

최정희 기자I 2020.03.25 01:00:00

기업들 차환 발행 막힐라 '전전긍긍'
라임사태에 코로나 직격탄 이중고
올 들어 5개사 1450억원 발행 취소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에이프로젠 KIC(007460)는 2월 초 세 곳의 투자자를 상대로 총 700억원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달 18일께 500억원에 대해선 투자자가 전환사채금 납입을 취소해 CB 발행 자체를 철회해야 했다. 매직마이크로(127160)도 작년 7월부터 추진하던 전환사채 300억원 발행이 23일 투자금 미납으로 철회됐다.

라임자산운용의 1조원대 환매 중단 사태로 침체기에 빠졌던 코스닥 상장사 전환사채(CB) 시장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악재까지 만나 더 얼어붙었다. 코로나19로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현금 확보 수요가 증가하자, CB를 받아줄 투자자를 확보하지 못해 발행이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연내 1조6000억원에 달하는 CB 만기가 예정돼 있어 차환 발행이 막힐 경우 코스닥 상장사가 자금난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의 회사채 지원책에 CB 등도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 연내 1조6000억원어치 CB 만기 예정

24일 채권·자산관리 금융정보시스템 본드웹에 따르면 이달 26일부터 연내 만기가 도래하는 CB는 무려 208건, 1조5596억원에 달한다. 특히 4월 1480억원을 시작으로 8월까지 무려 1조원 가량의 CB가 만기된다.

보통 CB는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어 발행 후 1년이 지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데 지금까지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CB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만기 때 원금 및 이자상환을 노리는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CB는 신용등급을 받지 않아도 되는 만큼 대출이나 회사채발행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쉽지 않은 기업들이 많이 이용한다. 기존 CB를 상환하는 방법이 차환 발행 외에는 마땅치 않다. 그로 인해 CB가 계속해서 발행돼야 자금 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지는데 차환 발행이 막힐 경우 CB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가 발생할 수 있다.

에스디시스템(121890)은 1월 22일 CB 200억원 발행이 취소되고 100억원의 유상증자도 투자자의 투자금 납입 철회에 무산됐다. 현진소재(053660)도 150억원의 전환사채 발행이 취소된 상태다. 올 들어 CB 발행이 취소된 것만 5개사, 1450억원에 달한다.

◇“정부 회사채 지원책에 CB 포함해야” 의견도

라임운용의 환매 중단 사태가 터졌던 작년 10월엔 CB가 9900억원 발행됐고 11월과 12월엔 각각 3200억원 가량 발행됐다. 올 들어선 1월 2200억원, 2월 4100억원이 발행되다 3월엔 9900억원으로 작년 10월 수준으로 증가한 상태다. CB 신규 발행은 공시 기준으론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나 작년 말이나 연초에 CB발행을 계획했다가 납입금 일정이 뒤로 밀리면서 3월로 CB발행이 연기된 사례도 상당하다. 투자자 변심이나 납입금 일정이 연기되면서 CB발행 조건이 깐깐해지거나 취소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테라셈(182690)은 작년 10월 중순 50억원(7회차)의 전환사채를 발행, 12월에 납입일이 정해졌으나 투자자가 두 차례 바뀌면서 3월 말로 미뤄졌다. 그 사이 CB발행 조건도 깐깐해졌다. 작년 10월엔 표면 및 만기 이자율이 0%였으나 만기 이자율이 4%로 올랐다. 50억원씩 발행키로 한 8, 9회차 CB역시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금액이 줄었다. 금호전기(001210)는 작년 12월 200억원의 CB(1회차) 대금이 1월말께 납입될 것이라고 밝혔으나 납입 일정이 세 차례 연기되고 투자자가 변경되더니 최종적으론 160억원만 발행되는 선에서 조정됐다.

CB 만기 금리는 작년 10월까지만 해도 평균 3.1%였다면 이달엔 3.7% 수준으로 높아졌다. 수성(084180)은 기존 전환사채 상환을 위해 표면이자율이 5%, 만기이자율이 11%에 달하는 CB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마저도 당초 45억원에서 25억원으로 금액이 줄었다.

현재로선 정부의 CB 지원책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CB 등을 묶어 신용보증기금이 보증하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으로 유동화하는 등 정부가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량 회사채에 비해 CB가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차환이 안 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CB 관련해서도 어느 정도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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