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벗어난 '학폭'…가해자는 '불복訴'·피해자는 '손배訴' 나선다

한광범 기자I 2023.03.03 06:30:00

학폭징계 불복소송 매년 100건↑…'가해자 낙인 벗기' 주목적
피해학생측, 민사소송 증가추세…배상 아닌 사실관계 확인 차원
"학폭 논란 커질수록 학교 대응 한계" 지적…소송 증가 불가피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50대 남성 A씨는 최근 중학생 자녀의 학교폭력 피해로 변호사 상담을 받았다. 자녀에게 수개월 동안 언어폭력을 가한 같은 반 학생들에게 각 강제전학, 학급교체 등의 처분이 내려지자, 이들 부모들이 불복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직후였다

가해학생들의 행정소송에 별다른 대응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A씨는 가해학생들을 상대로 한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고심하고 있다. 애초 그는 학교 및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단계에서 가해학생 부모의 합의 제안을 수락하려 했다.

하지만 가해학생 중 한 명의 부모로부터 “친구라고 생각해 장난을 치다가 과한 장난을 쳤다고 한다. 우리 아이의 미래도 생각해 달라”는 말을 듣고 합의 의사를 철회했다. A씨는 “우리 아이가 몇달 동안 학교 가는 것을 두려워할 만큼 공포에 떨었다”며 “그걸 ‘과한 장난’이라고 표현한 가해학생 부모 말을 듣고, 소리를 지르려다 참았다”고 말했다.

비교적 가벼운 처분에도 불복소송도 다수

A씨가 합의를 거부할 때쯤, 이미 가해학생 중 강제전학 처분을 받은 곧바로 변호사를 선임해, 징계 불복소송과 함께 ‘본안 판결 전까지 전학처분을 정지해 달라’는 효력정지 신청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A씨가 소송을 고심하는 이유는 이 같은 가해학생 측의 태도가 괘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해학생들이 제기하는 처분 불복소송은 매년 100건 이상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 8월까지 가해자의 학폭위 처분 불복소송은 325건에 달했다. 같은 기간 학폭위 심의 3만3806건 대비 1%가 안 되는 수준이다.

불복소송을 거는 가해학생이 받은 처분은 퇴학이나 전학 등의 무거운 처분뿐만 아니라 서면사과나 교내봉사 등의 가벼운 처분도 다수였다.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남지 않은 처분까지도 소송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교사 출신으로 학폭 소송 경험이 많은 나현경 변호사(법무법인 오현)는 “보통 학생들이 생기부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다고 보지만 실상은 다르다”며 “처분에 따른 불이익 때문에 다투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학폭 가해자’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민사소송, 초등 저학년도 대상 되기도

학폭위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 증가와 별개로 피해학생 측에서 제기하는 형사고소와 민사소송도 증가추세라는 것이 법조계의 설명이다. 소송은 초등학생 저학년들도 나설 만큼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제기하고 있다. 학폭위에서 사실관계까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형사고소의 경우 실제 학교폭력이 인정되더라도 대부분 소년보호처분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적 대응에 나선 피해학생 부모들은 주로 민사소송에 집중한다. 여기엔 소송이 없이는 학폭위 회의 내용 등을 피해자 측이라도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작용한다. 향후에 가해자의 학폭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일종의 증명서 같이 활용하려는 의도도 내포한다는 것이다.

수차례 학폭 사건을 대리했던 최민형 변호사(법무법인 에이시스)는 “학폭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물리적 폭력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고, 다수가 언어폭력이다. 이 때문에 법원에서도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가 많이 책정되지는 않는다”며 “다만 판결문을 통해 ‘학폭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학교 현장에서도 향후 학폭 관련 소송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 지역 한 중학교 교사는 “이미 학교 현장에서의 대응은 한계가 명백하다. 학폭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커지며, 학창 시절의 가해 사실이 주홍글씨처럼 평생 따라다닌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가해학생들은 가해사실을 없애려, 피해학생들은 피해사실을 인정받으려 더 소송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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