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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점투성 사모펀드]"운용사가 시키는대로"…사기에 속수무책

최정희 기자I 2020.07.03 00:11:00

운용사에서 투자자로 `펀드`가기까지 수탁·사무관리사 거쳐
사무관리사, 수탁사와 자산 크로스 체크 의무 있어도 안 지켜
사무관리사 "0.01~0.02% 수수료 받고 자산 확인 업무까지 못해"

[이데일리 최정희 오희나 유현욱 기자] 옵티머스자산운용 투자 사기가 충격적인 것은 사모자산운용사가 마음만 먹으면 투자자, 판매사는 물론이고 자산을 보관·관리하는 수탁기관(이하 수탁사), 펀드 기준가격 등 회계장부를 관리하는 일반사무관리회사(이하 사무관리사)까지 모조리 속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옵티머스는 대부분의 전문사모운용사들이 이용하는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를 거치지 않고 수탁사, 사무관리사와 각각 별도로 계약, 양측이 자산을 비교 체크해야 한다는 금융투자업 규정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허점을 이용했다. 업계 일부에선 ‘언제든 터질 것이 터졌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수탁사는 ‘담으라면 담고’..사무관리사는 ‘적으라면 적었다’

A운용사가 펀드를 통해 B자산에 투자했다고 하자.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사에겐 B자산 얼마를 샀다고 하고, 회계장부를 쓰는 사무관리사에겐 B자산과 관련된 기준가격 정보(발행일, 할인율, 만기일 등)를 제공한다. 사무관리사는 자사의 회계시스템에 B자산 관련 코드를 생성하고 A운용사는 B자산을 샀다가 팔았다 하면서 이를 회계시스템에 기록하게 된다. 회계시스템에서 거래 명세서를 출력하면 이것이 판매사, 투자자가 받아보는 펀드명세서가 된다. 그런데 A운용사가 수탁사에겐 B자산을 사달라고 하면서 사무관리사에겐 C자산을 샀다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펀드명세서상의 자산과 실제 운용 자산이 불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옵티머스 사기 사건의 핵심이다.

옵티머스는 ‘공기업 매출채권’ 투자 전략을 내세웠음에도 수탁사인 하나은행에겐 씨피엔에스, 대부디케이에이엠씨 등 부실채권에 투자했다고 했다. 그러나 사무관리사 ‘한국예탁결제원’에는 한국도로공사 토지매출채권을 매입했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옵티머스는 이메일에서 실수인지 알 수 없으나 씨피엔에스 채권 매입 계약서 사본 등을 첨부했는데 예탁원은 별 다른 의심 없이 이를 한국도로공사 매출채권으로 등록했다. 기준가격 산정에 필요한 발행일, 이율, 만기일 등이 적시돼 있어 추가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는 게 예탁원의 설명이다. 예탁원 관계자는 “사무관리사는 운용사 회계장부를 대신 처리하는 하청업체에 불과하다”며 “첨부파일은 봤으나 ‘토지매출 채권 몇 호’라고만 적혀 있고 기준가격 산정에 필요한 정보가 모두 적시돼 있었기 때문에 굳이 해당 채권이 도로공사 것인지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펀드 기준가격 산정의 전제 조건은 운용사의 실제 투자 자산과 회계상의 자산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 규정인 ‘금융투자회사의 영업 및 업무에 관한 규정’에도 사무관리사는 매월 수탁사와 증권 보유 내역을 비교해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증빙자료를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자본시장법 제247조 5항 4, 5호엔 수탁사가 기준가격이 장부상 기준가격과 0.3% 이상 차이가 나면 기준가격 산정이 적정한지 등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옵티머스 사건에선 수탁사와 사무관리사가 서로의 자산을 대조하지 않았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사무관리사의 기준가격이 수탁 자산의 기준가격과 비교해 적정 허용범위 내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옵티머스는 사무관리사가 펀드 기준가격을 고시할 때 일일이 자산 내역까지 밝히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수탁사, 사무관리사의 기준가격이 일치하도록 조정한 것이다. 특히 매출채권은 시장가격이 없어 운용사가 제공한 발행일 등을 토대로 기준가격을 산정하니 얼마든지 운용사가 조작할 수 있었던 셈이다.

◇ ‘슈퍼 을’이라는 사무관리사 “운용사, 자산 확인 못한다”

금투협 규정대로 예탁원이 하나은행과 옵티머스 자산을 대조했다면 사기 사건을 걸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수의 사무관리사는 현실적으로 수탁사와 자산 대조 업무까지 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사실상 관련 규정은 금융당국의 감독 사각지대에 있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사문화됐단 얘기다.

사무관리사들은 운용사에게 ‘슈퍼 을’에 불과하고 사모펀드가 주로 투자하는 대체투자 자산은 회계시스템에 일일이 수기로 코드를 직접 생성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업무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한 사무관리사 관계자는 “한 운용사에서 가져오는 서식이 무려 30~40개나 되는데 펀드매니저마다 다르고 자산마다 다르다”며 “표준화, 전산화가 안 돼 있어 수기로 입력해야 하는데다 야근 등 업무 부담에 직원들이 수시로 그만둬 경력이 쌓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간 펀드 자산의 0.01~0.02%포인트의 수수료를 받는 사무관리사한테 자산 확인 업무까지 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사무관리사 관계자는 “자산 확인 업무까지 하라고 하면 사무 관리한다는 곳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가격 산정은 국내 자산은 당일 처리, 해외 자산은 익일 처리하도록 돼 있어 여기에만 급급할 수 밖에 없는 구조란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판매사, 수탁사, 사무관리사는 네 탓 공방에 바쁘다. 판매사에선 예탁원이 옵티머스가 보낸 첨부파일을 꼼꼼하게 확인했더라면 펀드명세서가 거짓으로 발급될 일이 없었다고 지적하고 사무관리사는 수탁사가 제대로 확인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탁사는 사기를 치자고 마음 먹은 사람은 어떤 제도하에서도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입장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옵티머스는 수탁사 등이 펀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는 제도 허점을 이용한 사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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