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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37.창구를 통제 관리하라

함정선 기자I 2018.07.05 06:00:00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이 있다. 기업 위기관리 체계를 평가하는 방법 중에도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다. 어떤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해당 기업이 얼마나 내외부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잘 통제하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 시간에 배웠던 ‘삼투압’이라는 현상을 기억해 보자. 삼투압이란 농도가 다른 두 액체를 반투막으로 막아 놓았을 때, 용질의 농도가 옅은 쪽에서 농도가 짙은 쪽으로 용매가 옮겨가는 현상에 의해 나타나는 압력이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커뮤니케이션의 흐름도 그와 유사하다.

발생 위기와 관련된 여러 궁금증과 의혹 등으로 커뮤니케이션 수요가 높아진 외부로 기업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공급 방향은 흐르게 마련이다. 이를 차단하면 외부에는 정보의 진공이 발생하게 된다. 반대로 이를 완전히 개방하면 기업에 불리할 수 있는 정보들까지 흘러나가 섞여 채워질 가능성이 커진다. 차단과 개방은 둘 다 전략적 대응이 아니다. 위기 시 기업은 커뮤니케이션의 삼투압적 흐름을 적절하게 통제해야 자사가 원하는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커뮤니케이션 삼투압이 일어나는 일선을 기업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다. 부지불식간 많은 위해 정보들이 흘러 나가버리면 문제다. 정리되지 않은 내부 정보들이 흘러나가고, 커뮤니케이션 하도록 허락받지 않은 창구들이 모두 열려 버리면 문제다. 그에 더해 창구 스스로 자신의 생각대로 메시지를 외부로 흘려보내면 더 큰 문제가 된다.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창구가 수십에서 수백이 존재하면 그건 말 그대로 재앙이 된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VIP가 외부 지인들에게 개인적으로 자문한다 하면서 여러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그렇다. 임원들이 여러 지인과 거래처에 상의하기도 한다. 팀장급들이 여기저기 술자리나 식사자리에서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한다. 직원들이 각자 외부 거래처나 파트너에게 문제를 이야기하고 관련 부처나 언론, 시민단체, 커뮤니티, 온라인 등을 담당하는 직원들도 외부 커뮤니케이션 수요에 각자 대응한다. 당연히 이렇게 어지러운 창구들이 제대로 관리되기는 어렵다.

위기관리 체계란 기본적으로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통제되고 관리된다는 의미가 있어 그렇다. 위기가 발생하면 전사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신중함이 하나의 분위기가 돼야 한다. 위로부터 일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련 정보는 통합 관리돼야 한다. 내외부로 향한 모든 커뮤니케이션 창구는 이해관계자 특성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일원화해야 한다. 그런 이후에야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 통제 관리가 가능해진다.

일부 전문가들은 “위기가 발생하면, 기업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궁극적으로 그런 위기관리 체계가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수백에서 수 천 수 만에까지 이르는 임직원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차선책으로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일원화하라’ 조언한다.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언제든 누구든 여러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차라리 창구를 일원화해 버리면 그 창구가 더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일원화된 창구가 단순히 ‘하나’의 의미라기보다는 이해관계자별 일원화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언론을 향한 창구의 일원화. 검찰을 향한 창구의 일원화. 주주들을 향한 창구의 일원화. 시민단체를 향한 창구의 일원화. 내부 직원들을 위한 창구의 일원화처럼 해당 위기를 둘러싸고 있는 주요 이해관계자들을 향한 창구 각각의 일원화를 의미한다. 위기관리위원회 내부에서의 한목소리 중요성은 꼭 강조돼야 한다.

또한 각 이해관계자 창구의 전문성도 전제해야 한다. 장기간의 훈련과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창구는 창구 일원화 개념을 정확하게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생각하는 기업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해당 기업의 의지나 입장과는 다른 이야기들이 내부로부터 흘러나오고, 여기저기에서 내부에서만 알 수 있는 정보들이 유통되고 있다면 일단 그 기업의 위기관리 체계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위기 시 내부고발이나 내부정보 유출이 빈번해지는 트렌드까지 생겨나고 있어서 이 커뮤니케이션 창구의 통제와 관리는 위기관리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제 관리 없이는 위기관리도 없다.

◇필자 정용민은 누구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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