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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하정우 씨, 예술영화 출연은 어때요?"

최은영 기자I 2014.04.15 09:49:44

아트버스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역설

[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최근 극장가 화제작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미국의 영웅(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도, 신화 속 제우스의 아들(헤라클레스: 레전드 비긴즈)도, 세상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선 오브 갓)도 올봄 스크린에선 이 영화만큼 위대하진 못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예술영화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화려한 색감과 탁월한 미장센(화면구성). 웨스 앤더슨 감독은 다시 한번 스크린을 스케치북 삼아 한 편의 그림 같기도, 동화 같기도 한 환상적인 화면을 완성해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예술작품처럼 훌륭해 영화를 보다 보면 움직이는 미술관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도 인다. 아니면 팝업북 속에 들어앉았거나.

관객은 잘 만들어진 영화를 외면하지 않았다. 지난달 20일 개봉 첫날 1만 명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12일 50만 관객을 넘겼다. 10만 명만 넘겨도 ‘대박’으로 여기는 다양성 영화로는 이례적이다. 수입사가 밝힌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3만 명으로, 흥행 목표는 5만 명이었다. 기대치의 10배가 넘는 흥행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한 주 전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는 보릿고개였다. 흥행영화 5위까지를 모두 외화에 내어줬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포함됐다.

영화는 오락이자 예술이다. 상업영화가 오락에 치중한다면, 예술영화는 그 반대다. 전자는 ‘상품’을, 후자는 ‘작품’을 만든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작품으로 만들었는데 상품이 된 경우다. 그렇다면 한국의 예술영화는 왜 실리도, 이상도 챙기지 못한 채 힘없이 무너졌을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장면들.
배우 겸 감독으로 활동 중인 유지태는 과거 인터뷰에서 “저예산·독립영화는 상업영화의 방부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상업영화 반대편에 예술영화가 제 역할을 하며 존재해야 영화계가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한국영화 전성기에 만난 ‘국민배우’ 한석규는 이런 말을 했다. “관객을 이끌어가는 영화는 좋은 영화, 관객을 쫓아가는 영화는 나쁜 영화다. 문화도 훈련이 필요하다. 보는 만큼 눈이 높아진다. 좋은 영화로 관객의 눈높이를 높이는 것. 관객의 폭이 넓어진 지금 이때 한국의 영화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요즘 관객들이 정말 좋아하는 하정우 같은 배우라면 가능하지 않겠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더욱 화려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의 참여다. 빌 머레이·에드워드 노튼·애드리언 브로디 등 이른바 웨스 앤더슨 사단에 레아 세이두·마티유 아말릭· 하비 케이틀 등이 작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출연했다.

할리우드에선 규모가 큰 상업영화와 작품성 있는 예술영화를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주·조연에 심지어 단역을 자유롭게 오간다. 특급 스타도 예외는 아니다. ‘설국열차’의 틸다 스윈튼은 ‘나니아 연대기’ 같은 판타지 블록버스터에 조연으로 출연했다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84세 부호 마담 D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 ‘메소드 연기의 달인답다’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마블의 슈퍼히어로물 ‘토르’ 시리즈의 악당 로키 역의 톰 히들스턴 역시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에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출연하는 등 경계 없는 연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배우들은 어떠한가. 포스터에 적히는 이름순서 하나 가지고도 민감하게 신경전을 벌이곤 한다. 예술영화에 출연하는 유명배우는 해당 영화 감독의 ‘사단’이 전부다. 이것 또한 박찬욱·홍상수 등 해외영화제에서 주목받는 유명 감독의 작품에 한해서다.

관객은 이미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이끌 것인가, 쫓아갈 것인가. 아트버스터(예술성을 갖춘 블록버스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한국영화계에 던진 물음이다.

예술영화로는 드물게 국내에서 5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중인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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