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예술영화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화려한 색감과 탁월한 미장센(화면구성). 웨스 앤더슨 감독은 다시 한번 스크린을 스케치북 삼아 한 편의 그림 같기도, 동화 같기도 한 환상적인 화면을 완성해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예술작품처럼 훌륭해 영화를 보다 보면 움직이는 미술관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도 인다. 아니면 팝업북 속에 들어앉았거나.
관객은 잘 만들어진 영화를 외면하지 않았다. 지난달 20일 개봉 첫날 1만 명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12일 50만 관객을 넘겼다. 10만 명만 넘겨도 ‘대박’으로 여기는 다양성 영화로는 이례적이다. 수입사가 밝힌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3만 명으로, 흥행 목표는 5만 명이었다. 기대치의 10배가 넘는 흥행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한 주 전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는 보릿고개였다. 흥행영화 5위까지를 모두 외화에 내어줬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포함됐다.
영화는 오락이자 예술이다. 상업영화가 오락에 치중한다면, 예술영화는 그 반대다. 전자는 ‘상품’을, 후자는 ‘작품’을 만든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작품으로 만들었는데 상품이 된 경우다. 그렇다면 한국의 예술영화는 왜 실리도, 이상도 챙기지 못한 채 힘없이 무너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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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더욱 화려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의 참여다. 빌 머레이·에드워드 노튼·애드리언 브로디 등 이른바 웨스 앤더슨 사단에 레아 세이두·마티유 아말릭· 하비 케이틀 등이 작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출연했다.
할리우드에선 규모가 큰 상업영화와 작품성 있는 예술영화를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주·조연에 심지어 단역을 자유롭게 오간다. 특급 스타도 예외는 아니다. ‘설국열차’의 틸다 스윈튼은 ‘나니아 연대기’ 같은 판타지 블록버스터에 조연으로 출연했다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84세 부호 마담 D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 ‘메소드 연기의 달인답다’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마블의 슈퍼히어로물 ‘토르’ 시리즈의 악당 로키 역의 톰 히들스턴 역시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에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출연하는 등 경계 없는 연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배우들은 어떠한가. 포스터에 적히는 이름순서 하나 가지고도 민감하게 신경전을 벌이곤 한다. 예술영화에 출연하는 유명배우는 해당 영화 감독의 ‘사단’이 전부다. 이것 또한 박찬욱·홍상수 등 해외영화제에서 주목받는 유명 감독의 작품에 한해서다.
관객은 이미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이끌 것인가, 쫓아갈 것인가. 아트버스터(예술성을 갖춘 블록버스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한국영화계에 던진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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