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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프리미엄’ 4兆 환치기 하는데…은행은 ‘아묻따 송금’

이배운 기자I 2023.01.19 06:30:00

檢, 주범·브로커 20명 줄줄이 기소
무역대금 가장해 해외 가상자산 투기
‘실적위주 관행’ 은행들 검증 일절 안해
1.4조 송금 담당직원 포상까지 하기도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가상자산이 해외 거래소보다 국내에서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인 이른바 ‘김치프리미엄’을 악용해 총 4조3000억원에 달하는 외화를 해외로 유출하고 불법적인 이익을 챙긴 주범들이 검찰에 붙잡혔다. 이들이 외환 송금 절차의 허점을 노려 거액의 불법 수익을 챙기는 동안 일부 은행들은 외환 영업실적을 올리는 데만 급급해 이를 제지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치프리미엄’ 불법 외화송금 범행 수법 (그래픽=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나욱진 부장검사)는 수조원대 불법 해외송금 사건을 수사해 주범 및 은행브로커 20명을 외국환거래법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기고 해외로 도주한 1명을 지명수배했다고 18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무역대금을 가장해 해외 계좌에 외화를 송금하고 해외 코인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구입해 다시 국내 코인거래소로 전송했다. 이어 가상자산에 ‘김치프리미엄’이 3~5% 붙으면 매각해 이익을 얻었고 이러한 회전거래 행위를 반복해 이익을 부풀렸다.

이번에 붙잡힌 주범들은 총 4조3000억원을 해외에 송금하고, 약 1200억~2100억원 상당의 이익을 거둬 투기자금 제공자들과 나눠 가진 것으로 파악됐다. 막대한 외화는 고스란히 해외로 유출됐지만, 국내에는 가상자산만 유입된 것이다. 유출된 외화는 모두 허위 무역대금인 만큼 국내 실물경제와는 무관하게 투기세력의 배만 불린 꼴이 됐다.

검찰은 이들 범행이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해외송금 시점을 정하는 총책의 지시에 따라 공범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범행 전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총책 등 주범들은 투기자금 제공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다단계식 모집 후 범행 재원을 마련했다”면서 “자금제공자 중에도 공범급 가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또 반출된 자금 일부는 보이스피싱 등 범죄와 연관됐거나 불법적인 자금의 세탁 루트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자금흐름을 계속 추적한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서 문제의 해외 송금액 일부가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수사한 결과 자금이 북한으로 넘어간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가능성은 계속 열어두고 수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비트코인 ‘김치프리미엄’ 변동 차트 (자료=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찰은 이번 수사 과정에서 국내 시중은행의 ‘실적 위주 관행’이 불러온 해외송금 시스템상 문제점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페이퍼컴퍼니인 송금업체가 수백억원의 해외송금을 반복하며 천문학적 규모의 외화를 반출하는데도 은행 자체적으로 가상자산 거래, 자금세탁 연루 여부 등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고 의심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부 영업점이 외환 송금 고객을 유치하고 영업실적을 거두는 데만 급급해 송금 사유나 증빙서류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범행이 계속 가능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실제로 한 시중은행 지점은 5개월간 320여회에 걸쳐 ‘반도체 개발비’ 명목으로 1조4000억원 규모의 외화 송금이 계속되는 동안 ‘인보이스’ 외에 추가 증빙자료를 요청한 적이 없고, 담당 직원은 포상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한 영업점은 은행 본점의 의심거래 보고에도 불구하고 불법 송금을 계속 거든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은행 내부 책임자나 금융당국이 적시에 개입해 불법 송금을 차단하지 못하는 이상 단기간 ‘치고 빠지기’ 형태의 송금 행위를 막을 수 없다”며 “향후 은행권과 금융당국이 연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가상자산 투기 범행의 자금원 및 배후에 가려져 있는 공범 추가 수사를 통해 여죄를 밝히고 사건 전말을 철저히 규명하겠다”며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국민들께 불법적 투기수익은 반드시 박탈된다는 사실을 보여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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