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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것도 돈 들어" '상상 연애'에 빠진 '오포세대'

양승준 기자I 2015.04.14 08:53:56

남녀 만나 직접 구애→혼자서 상상으로 '가상연애'
대면 접촉 피하고 연애 소극적인 20~30세대 풍경
"TV로 대리만족" 연애프로그램 10여개 봇물

JTBC ‘나홀로 연애중’에 출연한 EXID 멤버 하니(사진=JTBC)
[이데일리 스타in 양승준 기자] ‘가상 연애’에서 ‘상상 연애’까지 나왔다. 연애·출산·결혼을 포기한 ‘삼포세대’에서 인간 관계까지 포기한 ‘오포세대’까지 등장하며 생긴 변화다.

‘사회의 거울’인 대중문화에는 최근 ‘상상 연애’가 화두로 떠올랐다. 연애를 하는데 상대가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우리 결혼했어요’처럼 가짜로 연애를 하는 직접적인 만남도 없다. 대신 ‘혼잣말’이나 ‘상상’으로 연애 상황을 펼친다. 남자 혹은 여자 단 한 명만 나와 사랑에 빠지는 상황을 재연하는 JTBC ‘나홀로 연애중’과 이성이 날 좋아하는 게 맞는지를 다른 사람에 물어보는 ‘마녀사냥’이 대표적이다. KBS2 ‘산장미팅-장미의 전쟁’(2003)처럼 남녀가 직접 만나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구애를 하는 것에서 홀로 상상만으로 연애 상황을 설정하는 식으로 프로그램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혼자 하는 상상 연애 뿐 만이 아니다. KBS2 ‘마녀와 야수’·MBC ‘천생연분 리턴즈’ ‘우리결혼했어요’·SBS ‘썸남썸녀’를 비롯해 Mnet ‘더러버’·MBC에브리원 ‘로맨스의 일주일’ 등 10여 개에 이른다.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연애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데이트 비용마저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오포세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오포세대’는 예전 세대처럼 대면 접촉을 하지 않고 직접 관계 맺는 일을 부담스러워해 매체(컴퓨터 등)를 통한 간접 관계에 익숙하다”며 “이런 쓸쓸한 대인관계와 연애 방식에 대한 거울이라고 볼 수 있다”고 봤다.

2003년 방송된 KBS2 ‘산장미팅-장미의 전쟁’. 남녀가 만나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 방식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10 여년이 지난 2015년에는 모니터로 상대 이성의 연애 습관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상상연애프로그램 JTBC ‘나홀로 연애중’이 나왔다(사진=각사 제공).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다 보니 상상만 하며 연애를 자급자족하려는 모양새다. 같이 즐기기 어려우니 혼자라도 ‘판타지’를 즐기는 모습이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몸으로 익히는 사랑은 종언을 고하고, 그 자리에 머리 속으로 상상하는 ‘신세대 사랑법’이 파고 들었다. 지난해 영화 ‘그녀’가 인공지능 운영체계(OS)와 한 남자의 사랑을 다룬 뒤 ‘상상 연애’가 등장했을 정도다. 소극적이며 간접적으로 연애를 하려는 20~30세대의 암울하고 쓰디 쓴 자화상이 대중문화에 스며든 것이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오포세대’의 연애프로그램에 대한 열광은 일종의 자위현상”이라며 “연애와 인간 관계 등 사회 결핍에 대한 대중문화의 반작용”이라는 의견을 냈다.

연애프로그램은 다양해졌지만 리얼리티를 위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진짜 대학교에 강의하러 가 보면 대학생들이 너무 바빠서 연애하지 못하는 이들이 의외로 굉장히 많더라”며 “그런데 지금 방송에서는 ‘삼포세대’가 연애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 즉 돈, 학벌 등의 문제는 다루지 않고 생물학적인 얘기와 남자와 여자의 심리 등 본능적인 얘기에만 치중해 보고 나면 허전하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주정순 미디어세상 열린 사람들 사무국장도 “방송되고 있는 연애프로그램을 보면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 식의 상투적인 연애 방식만 주로 다뤄 변화된 세대의 연애 방식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또 생물학적인 솔직함만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자극적으로 내세운 지점도 안타까운 지점 중 하나”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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