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화한 산불]③산불진화 시작과 끝에 공중진화대가 있다

박진환 기자I 2020.02.14 01:11:00

1996년 강원 고성산불 계기 이듬해 공중진화대 창설
산불 진압부터 산악 인명구조·구호 등 임무영역 확대
최근3년간 372회 출동·2413시간 진화·야간진화 322일

[원주=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전라북도 남원에서 밤 늦게까지 이어진 야간 산불진화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온 시간은 자정. 잠시 눈을 붙이려는 순간 강원 강릉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했다는 소식과 함께 또다시 출동 지시가 떨어졌다. 산불이 발생한 강원 강릉 옥계면에 도착하니 오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현장 도착과 동시에 유관기관들과 합동 진화대책을 수립한 후 동료 대원 18명과 함께 현장에 투입됐다.

밤새 이어진 산불로 현장은 강한 불기와 연기가 가득했다. 진화차와 중형펌프 3대를 동원해 진화 및 방어선을 구축했고 곧이어 도착한 공중진화대 38명이 합류하면서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날은 다행히 산불진화헬기가 동시에 투입되면서 오후 4시경 큰 불길을 모두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야간에도 안심은 금물. 현장에 대기하면서 재불 감시에 들어갔고 오후 9시가 넘어서야 겨우 철수가 가능했다. 3일째 이어진 진화작업에 모든 동료 대원들이 탈진했지만 내일 또 어떤 현장으로 갈 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대부분 진화인력과 장비가 철수한 야간까지 이어진 산불은 아직도 두려운 존재지만 나는 지켜야 한다. 내가 바로 산림청 공중진화대 대원이다.

산림청 소속 공중진화대원들이 야간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사진=산림청 제공)


1996년 4월 23일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3762㏊의 산림을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만들며, 국내 최대 규모의 산불로 기록됐다. 같은날 경기도 동두천에서 발생한 산불로 현장의 진화인력이 7명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1996년에는 전국적으로 527건의 산불로 5368㏊의 산림이 소실됐고 소중한 목숨마저 위협하는 사회문제로 인식되는 계기가 됐다.

이에 정부는 대통령 특별지시에 따라 지상에서의 전문 진화인력 충원과 함께 대형산불과 신속한 주불 진화를 차단하기 위해 공중진화 전문인력의 양성을 골자로 한 산불방지종합대책을 수립·발표했다. 이어 이듬해인 1997년 40명 규모의 공중진화대를 창설했다. 또 1998년 원주, 2000년 영암, 2001년 안동과 강릉 등에 차례로 공중진화대가 신설됐다. 이후 진천, 함양, 청양, 울진, 제주 등에 추가되면서 현재 강원 원주의 산림항공본부를 비롯해 전국 11개 관리소에 88명의 공중진화대원이 운영되고 있다. 발족 당시 공중진화대는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의 스모크점퍼(Smoke Jumner)나 핫샷(Hot Shot)을 벤치마킹했다.

산림청 소속 공중진화대원들이 야간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사진=산림청 제공


신속한 산불현장 출동과 화두를 선점 진화하기 위해서는 헬기에 탑승해 출동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했다. 헬기 착륙장소가 드문 산림 내에서의 진화임무가 동반된다는 점에서 로프(밧줄)을 이용한 헬기레펠 유경험자가 필수 조건이 됐다. 1997년 창설 당시 산림청은 군에서의 특수훈련을 받은 경력자를 대상으로 고강도 체력시험을 통과한 40명을 공중진화대원으로 첫 채용했다. 이후 2017년부터는 특수부대 경력이 아닌 임업관련 자격증 소지자를 채용하는 것으로 변경됐지만 고강도 체력시험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산림청 공중진화대원들이 산불진화를 위해 헬기에서 레필로 내려오고 있다. (사진=산림청 제공)


공중진화대는 최초 산불진화를 목적으로 발족했다. 그러나 공중진화대는 임무 특성상 다양한 산림사업을 동반, 임무의 다변화가 불가피했다. 2005년부터는 등산객 조난, 실종 및 추락 등의 사고에 대한 산악 인명구조 활동을 비롯해 각종 태풍, 산사태, 수해 등 자연재해를 대비한 구호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또 산림병해충 항공방제, 등산로 설치 및 정비사업 등 산림사업을 위한 화물운반 임무도 지원하는 등 임무 영역이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공중진화대는 산불이 발생하게 되면 헬기에 탑승해 산불 머리부분에 우선 투입된 후 주불을 직접 진화하는 동시에 속도가 느린 횡진 방향으로 방화선을 구축한다. 일반 지상인력이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 암석지대 등 험한 산지형의 산불에 주로 투입된다. 야간산불 진화는 차량으로 산불현장에 이동하며, 기계화산불진화시스템과 개인 진화장비를 이용해 진화작업을 실시한다. 산불진화를 포함해 산불현장대책본부의 자문 역할과 함께 드론을 이용한 야간산불 모니터링을 통한 진화전략 수립에도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임무 다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응급구조사 자격을 취득해 연중 산림헬기를 이용한 산악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산림청 공중진화대원들이 산불진화를 위해 헬기에서 레필로 내려오고 있다. (사진=산림청 제공)


공중진화대 발족 이후에도 재난성 대형산불은 계속됐다. 2000년 동해안 5개 시·군을 집어삼킨 강원 동해안 산불로 2만 3794㏊의 산림이 소실돼 850명의 이재민과 36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공중진화대는 국내 유일의 산불 지상진화 전문가로 그 활약이 소개되면서 특수진화대, 전문예방진화대 등이 발족하게 되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후 2002년 산림 3000㏊, 재산피해 60억원이 발생한 청양·예산산불과 불교 3대 기도도량 중 하나인 낙산사와 보물 479호 동종 등 소중한 문화재를 소실해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양양산불이 뒤를 이었다. 특히 2004년 3월 180㏊를 태운 속초 청대산 산불현장은 전쟁터, 그 자체였다. 청대산은 유네스코 생물권보호지역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설악산국립공원을 지킬 수 있는 동쪽 최후의 방어막이자 보루였다. 공중진화대는 설악산국립공원을 지키기 위해 이틀간 주야로 산불을 방어해 설악산과 울산바위를 지킬 수 있었다. 2017년 강원 강릉·삼척산불과 지난해 강원 고성·강릉·인제산불 등 현장에서도 공중진화대의 땀과 발자취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산림청 공중진화대원들이 산불진화를 위해 헬기에서 레필로 내려오고 있다. (사진=산림청 제공)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공중진화대가 활약한 기록을 보면 출동횟수 372회, 진화일수 505일, 출동인원 2054명, 진화시간 2413시간, 야간진화 일수 322일에 달한다. 진선필 산림항공본부장은 “내년까지 전국 12개 항공관리소에 10명씩, 모두 120명의 공중진화대 인력을 확충할 계획”이라며 “공중진화대는 기본 산불진화부터 등산객 조난 등 산악 인명구조, 구호활동에서 최근에는 산림사업 지원 등 임무 영역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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