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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페이퍼]'박찬호에서 강정호까지' 코리안 빅리거 역사

이석무 기자I 2016.02.26 08:32:54
1994년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코리안특급’ 박찬호.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한국 선수의 역사는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6년 당시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린 중앙고 3학년 이원국은 당시 제일은행 코치였던 박현식의 소개로 일본프로야구 도쿄 오리온스와 계약했다. 하지만 당시 외국인선수 보유 제한으로 1군 진입이 여의치않자 미국으로 방향을 틀었다.

1969년 샌프란시스코에 입단한 이원국은 몬트리올, 디트로이트 등을 거치며 마이너리그 트리플A까지 올라섰다. 멕시칸리그에선 150승이나 거뒀다. 하지만 끝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는 못했다.

이재우 전 OK베어스 감독도 1972년 오클랜드에 입단해 트리플A까지 활약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 박철순은 1980년 밀워키에 입단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계약금 1만 달러를 받았다. 더블A까지 올라간 박철순은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국내로 돌아왔다. 당시 OB베어스는 그를 데려오기 위해 이적료 3만 달러를 지불했다.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진정한 역사는 1994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한양대 재학 중이던 박찬호는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뒤 그 해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에 직행했다. 첫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가 일품이었던 박찬호는 1996년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올라섰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며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2002년 FA 자격을 얻어 텍사스로 이적하면서 5년간 총액 65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계약을 따냈다.

박찬호는 2005년 개인통산 100승을 달성했고 2010년에는 124승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 투수에 등극했다.

박찬호의 성공 이후 한국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봇물 터졌다. 김병현, 서재응, 김선우, 최희섭 등이 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잠수함’ 김병현은 애리조나의 마무리투수로 성공했고 ‘제구력 마스터’ 서재응도 선발투수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최희섭은 유망주 순위 1, 2위를 다투는 거포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들은 박찬호 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추추트레인’ 추신수(텍사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높은 벽이었다.

추신수는 코리안 빅리거 역사의 또다른 획을 그은 주인공이다. 추신수는 부산고 재학 중이던 지난 2000년 계약금 185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시애틀에 입단했다. 이후 오랜 마이너 생활을 거쳐 2005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클리블랜드, 신시내티를 거쳐 2013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텍사스 유니폼을 입었다.

추신수는 텍사스와 7년간 1억3000만 달러의 FA 계약을 맺었다. 박찬호를 두 배나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역대 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그 최대 계약이기도 했다.

이제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역사는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그전까지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프로 경험은 없지만 가능성 있는 어린 선수들을 데려가 키우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류현진(LA 다저스)과 강정호(피츠버그)가 성공하면서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한국에서 이미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류현진과 강정호는 각각 2013년과 2015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우려를 딛고 첫 시즌부터 큰 활약을 펼치며 한국야구에 대한 인식을 확 바꿨다.

이들의 성공은 김현수(볼티모어), 박병호(미네소타),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이대호(시애틀)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이어졌다. 2016년 메이저리그에는 한국인 선수가 최대 7명이나 활약하게 된다. 아직 마이너리그에서 기회를 노리는 유망주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바야흐로 코리안 빅리거의 르네상스가 활짝 열렸다.

추신수
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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