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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돋보기]일본의 자본시장개혁

송길호 기자I 2024.03.04 06:25:00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일본 자본시장이 무섭게 변하고 있다. 니케이지수는 34년 만에 3만 9000선 천장을 뚫었고 도쿄거래소 시가총액은 아시아 최고 수준을 회복했다.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글로벌 투자자들이 일본 증시 상승을 글로벌 긴축과 엔저, 중국 부진 같은 외부요인으로만 보지 않고 일본 경제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기시다 정부의 ‘새로운 자본주의’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자본주의’가 제기하는 정책 패키지는 상당히 체계적이고 구체적이다. 핵심은 임금 상승과 자산소득 더블링을 통해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잡겠다는 것인데, 최근 흐름을 보면 임금보다 자본시장 개혁을 통한 자산소득 더블링을 더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글로벌 투자자 역시 과거 ‘아베의 3개 화살’보다 기시다의 새로운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자본시장 개혁 패키지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기시다의 자본시장 개혁은 개인이 자유롭게 주식, 펀드에 투자할 자산관리계좌(NISA)를 확충하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핵심은 지배구조개혁과 자산운용업 선진화다. 외형 성장을 중시하는 일본기업의 오래된 경영지배구조를 경쟁력 약화의 근본 원인으로 보고 통상의 지배구조 개혁을 넘어선 기업 밸류업정책으로 한 발 더 나아갔다. 배당 확대라는 단순한 주주환원정책을 넘어 기업의 장기 활력과 성장 가능성을 주주에게 환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기업이 주주 중심의 수익성· 성장성 목표치를 제시하고 주주와 대화하며 만들어 가도록 한 것이다. 기업 활력과 주주가치 경영을 통해 일반 국민의 자산소득을 장기적으로 더블링할 수 있는, 영미 국가도 시도하지 않은 신선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자산운용 개혁은 자산운용입국 실현 계획이란 이름으로 작년 말에 발표됐다. 일본 금융청이 언급한 대로 자본시장 개혁의 마지막 퍼즐인데, 가장 난해한 정책이다. 성장과 분배 선순환의 핵심인 자산소득 더블링은 주주가치 면에서 성과를 내는 기업을 선별해 낼 수 있는 선진화된 자산운용시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00조엔의 가계자산과 900조엔의 기업 자산의 상당 부분을 예금에서 투자로 유인하겠다는 의도였다.

자산운용 개혁에는 자산운용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고령화된 일본 국민의 자산소득과 직결되는 퇴직연금 개혁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 일환으로 최근 발표된 세부 정책이 자산운용특구 지정방안이다. 현재 자산운용 역량으로는 자산소득 더블링이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투자전략을 가진 루키를 포함한 국내외 자산운용사들이 모여드는 자산운용중심지를 육성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홍콩 금융중심지 쇠퇴로 구심점을 잃은 아시아 금융중심지 전략과도 연계된 것으로 보이며 일본 증시가 재평가 받고 있는 지금이 적기로 판단한 듯하다.

퇴직연금 개혁의 경우 일본은 DB형 비중이 높고, 연금자산은 DB형이든 DC형이든 예금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가계자산은 물론 일본 가계의 은퇴자산도 제로금리에 묶여있는 것이다. 예금에서 투자로의 이동을 위해 도입한 디폴트옵션 역시 지지부진하고 여전히 예금 위주로 운용되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를 보는 듯하다. 여기에서 주목하고 있는 지점은 수탁자책임이다. 결국은 고객의 자산소득을 더블링하는 책임은 퇴직연금 사업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자본시장 개혁은 밸류업정책뿐 아니라 자산소득더블링이란 목표를 위해 NISA, 밸류업정책, 자산운용개혁이 삼위일체로 돼 있다. 자산가격 폭락으로 시작된 잃어버린 30년을 자산소득 더블링으로 되찾겠다는 기시다 정부의 거대한 정책 맥락과 장기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의 자본시장 개혁정책에는 ISA, 지배구조, 금융중심지, 퇴직연금처럼 우리나라 자본시장 정책에도 익숙한 것들이 많다. 우리나라도 지금까지의 정책 성과를 바탕으로 자산관리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국민과 글로벌 투자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본시장 선진화 스토리가 구성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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