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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미는 새끼를 질식시켜 죽였나[헬프! 애니멀]

김화빈 기자I 2022.09.12 09:00:00

국제적 멸종위기종이 국내에선 ‘사육곰’?
사육곰 웅담 채취 합법은 한국과 중국뿐
2026년 곰 사육 전면금지…정부 생추어리 130여마리 수용
남은 곰 360마리인데 어쩌나

[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고무호스로 쓸개즙 착취를 당하는 새끼의 절규를 어미는 견딜 수 없었다. 어미 곰은 죽을힘을 다해 철장을 부쉈다. 쓸개즙을 착취하던 사람들은 놀라 도망쳤다. 어미 곰은 새끼의 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풀고 싶었지만 풀 수 없었다. 어미 곰은 새끼를 껴안아 질식시켜 죽였고 자신은 벽에 머리를 들이받아 자살했다. 2011년 러민바오 등 중국 현지 매체에 보도된 사육곰 쓸개즙 착취의 참상이다.

반달가슴곰이자 사육곰 (사진=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멸종위기종 반달가슴곰, 국내에선 사육곰?

반달가슴곰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 목록에 오른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우리나라는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반달가슴곰은 국내에서 ‘사육곰’으로도 불린다. 사육곰은 웅담 등 곰의 신체 부위를 먹기 위해 사육되고 있는 곰을 말한다.

1981년 곰 쓸개즙이 간장 보호에 좋다는 인식에 소비가 활발히 이뤄지자 정부는 농가 소득 창출 목적으로 반달가슴곰 사육을 장려했다. 곰의 웅담, 발바닥, 피 등이 식용으로 거래돼 왔다. 그러나 1985년 곰 수입이 중단되고, 1993년 멸종위기 동물 거래 규제(CITES) 가입으로 곰 수출도 금지됐다.

곰 사육장 전경 (사진=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사육곰 육성 정책이 실패하자 정부는 2005년 웅담 채취를 합법화했다. 곰 도축이 금지되면서 곰이 살아 있는 동안 채취가 가능한 웅담의 판매 길을 열어 농가 소득을 보전하고자 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웅담 채취가 합법인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 사육곰 개체수는 360마리, 사육 농가는 24곳으로 조사됐다.

자연에서 반달가슴곰은 새순, 열매, 과일, 나무뿌리 등 식물성 먹이를 주로 먹는 잡식성 동물이다. 그러나 사육 농가에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식육 부산물이나 음식물 쓰레기 등을 급여한다. 몸에 맞지 않은 것들만 먹었던 탓일까. 사육곰 농가 뜬장 밑에는 곰들의 하얀 기름변이 가득했다.

사육곰들은 곰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뜬장에서 살면서 발바닥이 갈라졌다. 비위생적인 환경 탓에 털이 자라나지 않는 피부병도 얻었다. 사육곰들은 좁은 뜬장에서 가려운 몸을 온종일 긁고 스트레스를 이기려 고개를 흔드는 정형행동을 보인다.

정부의 곰 사육 종식 선언…갈 길 먼 곰 생추어리

환경부, 사육곰협회, 동물단체, 전남 구례군·충남 서천군은 2021년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한 끝에 2026년부터 곰 사육 전면종식에 합의했다. 사육곰 산업이 사양화되고 사육곰 학대와 불법증식 등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자 내린 결정이었다.

정부는 2025년까지 사육곰 보호·관리 기반을 조성하고 2026년부터 몰수한 곰을 보호시설(생추어리)로 이송해 인도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생추어리는 공장식 축산 환경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동물이 평생 가능한 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사육곰 농장에서 구출된 반달가슴곰이 해먹 위에 앉아 있다 (사진=청주동물원)
곰 생추어리 시설이 생길 전남 구례·충남 서천은 지역 내 보호시설 설치와 운영에 적극 협조키로 했다. 2020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선 ‘사육곰 보호시설 설계비’ 예산이 통과돼 구례군 곰 생추어리 설계가 진행 중이다. 구례군은 마산면 황전리 일원 약 2만 4000㎡ 부지에 국비·군비 90억원을 투입해 2024년까지 야외방사장, 사육장, 의료시설 등을 갖춘 반달가슴곰 생추어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2021년 12월에는 서천군 사육곰 생추어리 조성 예산도 통과됐다.

그러나 남은 사육곰 300여마리를 모두 수용하기에는 정부가 추진하는 생추어리 규모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남 구례 생추어리는 49마리를, 충남 서천 생추어리는 최대 70~80마리를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은 “정부가 주도한 곰 생추어리 시설은 수용 개체수가 130여마리 정도”라며 “국내에 남아 있는 300여마리 사육곰을 전부 수용할 수 없다. 남은 개체수는 동물단체에서 개별적으로 구조활동을 진행 중이지만 추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육곰 산업 자체가 정부에서 시작됐지만, 정부는 이를 방치해왔다”며 “사육곰 중성화 사업은 정부의 주도로 이뤄졌지만, 사육곰 문제 공론화는 동물단체들의 오랜 노력이었다”고 부연했다.

미국 야생동물보호단체 TWAS가 조성한 생추어리 계류장에서 적응 기간을 갖고 있는 22마리의 곰들 (사진=동물자유연대)
실제 동물자유연대는 강원도 동해 농장에서 사육되던 22마리의 사육곰들을 구조, 국내 9개 단체들과 협업해 미국 생추어리 TWAS(The Wild Animal Sanctuary)로 이송했다. 구조된 22마리의 곰들은 미국의 대자연을 누리며 ‘사육곰이 아닌 평범한 반달가슴곰’으로 살게 됐다.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6명은 ‘곰 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은 지난달 23일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돼 소위 심사를 받고 있다. 법안은 △곰 사육 및 불법증식 전면 금지 △곰 부산물 취득, 운반, 보관, 섭취 전면 금지 및 몰수조치를 강제하고 있다. 만일 이를 어길 시에는 벌금형 또는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환경부는 “사육곰 금지 특별법이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세부 하위법령인 시행령·시행규칙 내용을 마련할 것”이라며 “내부에선 이미 관련 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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