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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전국민 100만원`, 걱정되는 이유[최훈길의뒷담화]

최훈길 기자I 2021.11.01 07:01:00

경기회복기에도 재정 여력 확보 없이 펑펑
수천만원 보너스 받는 사람도 재난지원금
장기적 재정관리하는 재정준칙은 모르쇠
100만원 달콤하지만 결국 자녀들 빚 부담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3가지 메시지를 주려고 이같은 국가재정 책을 썼습니다.”

재정 전문가인 안일환 청와대 경제수석은 기획재정부 2차관 시절에 ‘2010 한국의 재정’ 책을 출간한 이유에 대해 이데일리와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책은 안 수석이 2010년 기재부 예산총괄과장 시절에 대표집필자로 출간된 책입니다. 안 수석 등 당시 기재부 에이스 48명이 450쪽이 넘는 책을 쓰는데 참여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안일환 靑 경제수석 “경기회복 땐 재정건전성 회복이 핵심과제”

책에 적시된 3가지 메시지는 △“경제위기 시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시적인 재정건전성 관리를 통해 평소 재정의 대응 여력을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 △“위기 시에는 선제적이고, 확실하며, 충분한 수준으로 대응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효과적인 대응책” △“위기 이후 경기회복이 본격화될 경우에는 즉시 재정건전성 회복을 핵심 정책과제로 설정해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재정 여력을 확보해 놓고, 위기 때는 확장적 적극적으로 재정을 풀고, 경기가 회복되면 풀었던 돈줄을 죄라는 것입니다. 책에는 “일본과 주요국의 사례에 비춰 볼 때 재정적자는 한 번 발생하면 만성화되기 쉽다”는 경고 메시지도 적시돼 있습니다. 이는 IMF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현장에서 겪은 공직자들이 향후 정부와 후임 공무원들에게 전한 재정 메시지였습니다.

이 책을 다시 펼쳐놓고 안 수석의 발언을 돌이킨 것은 최근 재정운용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정부가 11월1일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를 시작하면서 경기회복세가 전망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4.0%, 내년에 2.9%로 전망했습니다. 당초보다 전망치를 높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청와대 경제수석이 책에서 쓴 것처럼 이제는 재정건전성 회복 논의가 시작되는 게 순리에 맞습니다. 그러나 기재부는 오히려 반대로 갔습니다. 기재부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채무를 올해 965조3000억원, 내년 1068조3000억원, 2025년 1408조5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7.3%에서 2025년 58.8%로 대폭 늘어납니다.

이같은 재정운용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당시 각각 마지막으로 발표한 5년 단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에서만 이렇게 국가채무를 대폭 늘리는 계획을 짰습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갈수록 줄이거나 비슷하게 유지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경제위기 때에 재정을 풀더라도 회복기에는 나라살림을 비축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참조 이데일리 10월25일자 <차기정부 1500兆 나랏빚..“브레이크 없는 고장난 나라살림”>)

그럼에도 정치권은 정부보다 더 나갔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재난지원금을 1인당 100만원 씩 추가로 더 지급하자고 합니다. 전 국민에게 지급하면 50조원 이상 재원이 필요합니다. 50조원 가량을 국채로 충당하게 되면 나랏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국가채무가 문재인 정부 첫 해인 2017년에 660조2000억원에서 올해 1000조원을 넘을 수 있습니다.

기획재정부의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매년 100조원 넘게 늘어난다. 이대로 가면 2025년에는 1408조5000억원(GDP 대비 58.8%)을 기록, 차기정부(2022~2027년)에서 1500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단위=원, % (자료=기획재정부)
◇文정부 나랏빚, 2017년 660조→내년 1068조


물론 나랏빚이 늘어도 써야 할 곳에는 써야 합니다. 식당 등 자영업, 취약계층은 여전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최근 통계청, 고용노동부에서 잇따라 발표되는 통계를 보면 ‘K-양극화’가 심해지는 양상입니다. 올해 3분기 정보통신업 서비스업 생산은 전분기 대비 3.6% 증가했지만, 숙박 및 음식점업 서비스업 생산은 2.8% 감소했습니다. 상용근로자와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 격차는 작년 8월에 193만원 정도였는데, 올해 8월은 203만원으로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주면 양극화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정부가 1인당 100만원 주겠다는데 머리띠 두르고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보너스로 수천만원까지 받는 직원까지 정부 지원을 받는 건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재정 원칙에도 맞지 않습니다. 한정된 국가재정 상황에서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업종과 취약계층에게 두텁게 집중지원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하는 이코노미스트와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현재 재정건전성이 우수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IMF에서 주시하는 것은 한국이 지속가능한 재정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입니다. 방만재정에 브레이크를 거는 재정준칙 관련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10개월째 국회 계류 중입니다. 국회 논의조차 실종된 상태입니다. 지속가능한 재정을 위한 논의 노력조차 없는 셈입니다.

안일환 수석은 앞서 언급한 책에서 “경제위기 시 한번 증가한 국가채무가 쉽게 감소하지 않았던 과거 주요 선진국들의 사례들을 고려할 때 국가재정운용계획 등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국가채무를 철저히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연차별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방법이 정답입니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닙니다. 100만원씩 받으면 지금은 달콤하겠지만, 결국 누군가는 늘어난 빚을 갚아야 합니다. 늘어난 나랏빚을 짊어져야 하는 자녀들이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안일환 청와대 청와대 경제수석이 기획재정부 예산총괄과장 시절에 대표집필한 ‘2010 한국의 재정’ 책.
※모든 정책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선한 취지의 정책이 항상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정책 효과’ 못지않게 ‘정책 오류’ 역시도 균형 있게 봐야 합니다. 국민에게 도움되는 정책이 되도록, 세종관가 이슈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추적해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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