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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아파트 경비원 처우 개선” 요청했지만…고용현황 파악도 안된 서울시

김기덕 기자I 2021.06.01 06:00:00

오 시장, 정부에 “단기 근로계약시 지원제외” 주장
경비노동자 근로현황 없어 개선방안 적용 어려워
인센티브 제공·공제조합 설립도 올해 물 건너갈 듯
“독소조항 제한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서울 A아파트에서 근무하는 60대 이석무(가명) 경비원은 최근 입주민으로부터 택배 배송을 잘못 전달했다는 이유로 욕설을 들은 적이 있다. 계약상 휴게시간도 8시간으로 규정돼 있지만 실제 절반 가량도 쉬지 못한다. 실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최저임금 보다도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간혹 부당한 대우나 지나친 주민 갑질에 대해 따지려고 했지만 ‘입주민대표회의 3인 이상 또는 아파트 입주민 10인 이상 요청시 해고가 가능하다’는 아파트 관리규칙 조항 때문에 이마저도 못하고 있다. 이씨는 오늘도 꾹 참고 일을 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단지 경비실 모습.(사진=연합뉴스 제공)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 특히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가 몰린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경비노동자 공제조합 설립 등을 내세운 종합지원대책을 발표했음에도 여전히 개선된 사항이 전혀 없어 ‘땜질식 처방’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도 아파트 등 공동주택 경비노동자의 고용불안 해소를 위해 정부에 제도 변경을 요구했지만, 정작 서울시는 고용 현황에 대한 제대로 된 현황 파악도 안 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가 관리하는 아파트 의무관리 대상인 2200여개 단지 중 단기 계약직 경비노동자의 숫자조차도 집계하지 못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입주민 갑질이나 독소조항을 제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기계약시 지원 제외 건의했지만…대상단지도 파악 못해

31일 서울시에 따르면 공동주택 관리법에 따라 지난해 말 현재 서울시가 관리하는 있는 의무관리 아파트 단지(150세대 이상)는 총 2258개 단지다. 해당 아파트 단지 경비노동자는 대략 2만5000명 내외로 추산된다.

해마다 신규 아파트 단지와 경비노동자가 조금씩 늘면서 아파트 주민 갑질은 물론 고용 불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강북구 한 아파트 주민이 해당 아파트 경비원을 감금하고 폭언·폭행, 해당 경비원이 자살에 이르게 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을 추모하기 위해 생전에 그가 근무하던 경비 초소에 분향소가 마련된 모습. (사진=뉴시스 제공)


이러한 경비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오 시장은 지난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오 시장은 “아파트 경비원들의 단기근로계약 관행이 계속되면서 고용불안이 여전히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며 “(경비원들의)근로계약기간을 1년 미만으로 하는 사업장은 정부의 일자리안정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현행법상 정부에서 지원하는 일자리 안정자금은 30인 미만 사업장이 지원 대상이다. 단 아파트 경비원, 청소원 등은 예외적으로 종업원 규모에 상관없이 지원을 한다. 오 시장의 주장은 일자리안정자금의 도입 취지를 고려해 단기 근로계약 관행을 없애고 고용 불안을 해소하자는 차원이다.

그러나 서울시에서는 아직 경비노동자의 근로 계약기간의 현황조차 파악되지 못한 상황이다. 당장 개선된 기준안을 적용한다고 이를 실제 적용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아파트 경비노동자 등의 지원과 관리, 인권 문제를 담당하는 서울시 부서는 주택건축본부 공동주택과와 노동민생정책관 노동정책담당관이다. 해당 부서 실무진들은 “개별 아파트 마다 관리하는 경비원 숫자가 다른데다 근로계약 기간은 통계관리 항목이 아니기 때문에 용역 등을 추진하기 전에는 현황 파악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서울시가 2019년에 조사한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를 보면 서울시는 아파트 경비원 3개월 이내 계약이 30.9%, 6개월 계약이 11%로 전국 평균(3개월 21.7%·6개월 8.7%) 보다 단기계약 비율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통계는 서울 전체 25개 자치구 중 강서·노원·서대문·성북구 등 4개 자치구 경비노동자 490명을 조사한 결과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단지에서 근무 중인 경비원 모습.(사진=연합뉴스 제공)
◇인센티브·공제조합 등 허울뿐인 지원책…“실질적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서울시가 지난해 6월 대대적으로 경비노동자 종합지원책을 발표했지만 주요 개선 방안은 대부분 실행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가 제시했던 주요 방안은 △아파트 관리규약에 독소 조항 삭제 시 인센티브 지급 △아파트 경비노동자 공제조합 설립 지원 △경비노동자 권리구제 신고센터 운영 등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아파트 관리규약에 고용승계 규정을 반영해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행위를 막고, 경비노동자들이 실업·질병 등 위기 상황에서 최소한의 생활 안전망을 갖추게 돕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서울시 제공.


다만 이데일리 취재 결과 현재 서울 지역에서 경비노동자 공제조합 설립은 추진 절차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 또 고용 안정을 실현하는 모범 단지를 대상으로 보조금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위한 시 예산은 올해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비노동자 공제조합을 설립하려면 자치구별 노동자들 간 자족모임이 결성돼 있어야 하는데 고령인 노동자들이 많은데다 2교대 등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올 3월 노동자 인권 관련 시 조례가 개정됐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상황 등에 예산 반영이 어렵고 내년에나 우수 단지 20곳을 선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입주민 갑질, 경비원 인권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지만 처우개선 방안은 여전히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시 등 관리주체는 입주민 갑질 등 드러난 현상에 대해서만 대처할 것이 아니라 입주민들을 계도할 수 있는 윤리교육이나 공익적 성격의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실행해야 한다”며 “불공정 계약 등 독소 조합도 물리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나 방법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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