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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성 무시한채 무조건적 경쟁 요구…방위산업 생태계 무너뜨려

김관용 기자I 2018.11.26 06:00:00

방위사업 패러다임 바꾸자②
정부가 유일한 수요자 '슈퍼갑'
공개경쟁 입찰방식 '부작용'
선별적 경쟁체제로 전환 필요

국산 지대공 무기체계인 천궁 블록-Ⅰ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천궁은 수직발사관에서 미사일을 밀어낸 뒤 공중에서 점화한 추진력으로 비행해 목표물을 타격함으로써 발사대를 움직이지 않고 360도 모든 방향의 적과 교전할 수 있다. [사진=공군]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국내 방위산업에 대한 오해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이른바 ‘군산복합체론’ 인식이다. 방위산업체가 정부와 상호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부의 방위산업 보호 육성 정책 아래 업체가 독과점적 이익을 영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철저한 ‘갑을’ 관계다. 국내 방위산업 구조는 정부가 유일한 공급자인 동시에 유일한 수요자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획득·방위산업 관련 법률과 규정을 만들고 자체적으로 지체상금과 부정당제재 등 각종 처벌 권한을 갖고 있다. 원가 검증 뿐 아니라 이익률까지 정부가 결정하기 때문에 자유경쟁시장에서 통용되는 수요와 공급 이론이 성립하지 않는다.

◇전문화·계열화 정책 폐지 10년, 방위산업 ‘황폐화’

하지만 정부는 이같은 방위산업 특수성을 무시한채 지난 2008년 방위산업의 전문화·계열화 정책을 폐지했다. 전문화·계열화 정책은 군수품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신규 업체 진입을 제한하고 기존 업체에는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유도무기 사업은 금성(LIG넥스원), 전차는 현대(현대로템), 항공기는 대한항공 등이 담당하는 형태였다. 전문화·계열화 정책 폐지 이후 모든 무기체계 개발 구매 계약이 개방과 경쟁 방식으로 전환됐다. 이를 통해 모든 업체에게 기회 균등의 차원에서 공정성은 제고됐다고 할 수 있지만, 기존 방산업체 입장에선 계약 수주의 연속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공장가동률 저하와 인력 유출을 야기하고 결국 기업의 설비투자 및 기술개발 의욕을 꺽어 기업 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됐다.

특히 공개경쟁 입찰방식으로 인해 기술 보다는 가격 경쟁이 사업 수주를 위한 결정적 요건이 될 수밖에 없다. ‘일단 수주하고 보자’는 업체들의 과당 경쟁과 저가 응찰이 일반화됐다. 낙찰 후에는 하청 및 협력 업체들을 ‘쥐어짜는’식의 납품가 후려치기와 특정 협력 업체와 공모해 원가를 조작하는 등의 부작용을 초래했다.

기업의 수익성 악화는 부실 제품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방산비리’ 수사 대상이 돼 폐단을 낳았다. 비효율도 심각하다. 탐색개발에서는 A업체가 선택돼 개발에 참여하고, 체계개발에서는 B업체가, 실제 양산에서는 C업체가 생산을 담당하는 식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방위산업의 특수성을 인정해 루즈벨트 대통령의 방산 인센티브 정책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면서 “원가 플러스 방식의 이윤 보장, 군수공장 건립에 정부 융자 허용, 방산업체간 협력 촉진을 위한 독점금지법 예외 적용 등으로 방위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방위산업의 특성과 시장 여건을 감안한 합리적이고 균형 있는 제도가 시급하다”고 했다.

◇무차별적 아닌 선별적 경쟁체제 전환 필요

이같은 문제 때문에 이명박 정부 당시 미래기획위원회는 국내 시장의 규모, 전략적 중요성 등을 감안해 선별적인 경쟁체제로 전환하고, 최저가에서 성능·기술 중심의 경쟁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한바 있지만, 제도화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방위산업 환경은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방 예산은 증가하고 있지만, 2017년 국내 상위 10개 방산업체 매출과 수출은 전년대비 17.8%, 34.5% 각각 줄었다. 대부분의 대형업체들의 영업이익율은 2%로 제조업 평균 8%에 비하면 ‘고사’ 수준이다.

또 방위산업은 국가가 유일하게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적용을 받지 않으면서 자국 산업을 배타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산업이지만, 전문화·계열화 폐지로 우리 방위산업은 요소기술력 중심의 ‘알짜’기업 중심이 아닌 체계종합업체의 난립 구조로 이어졌다. 미국이 국방비의 효율적 활용과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 지원 하에 50여개 업체를 록히드마틴·보잉·노스롭그루만·레이시언 등 4개로 체계통합업체를 구조조정 한 것과는 비교된다. 미국 방위산업은 이들 4개 업체에 요소기술을 가진 업체들이 협력하는 형태다. 유럽 역시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역내 통합으로 EADS(프랑수·독일·스페인), MBDA(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소수 합작 법인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방산업체들은 무기체계 개발 전 영역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희각 한국국방발전연구원 연구원은 “현재의 국내 방위산업은 국방예산이 증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방산업체 매출은 거의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방산관련 사업수주 기회를 갖지 못한 업체들은 스스로 자연스런 인수합병(M&A)을 한다든가 업종 전환을 유도하고, 사업수주로 참여한 기업들은 기술 축적을 도모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기업으로 육성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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